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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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1 (07:50:40)

주님 승천 대축일

 

1독서 사도 1,1-11

2독서 에페 1,17-23

복 음 마르 16,15-20


 

주님 승천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장소적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어느 장소에 올라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초월하셨다, 모든 것 위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어떤 장소에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을 초월하시는 하느님,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하느님 즉,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지식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주님 승천의 신비는 임마누엘종말론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Immanuel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 참조).’는 뜻입니다. 그리고 함께 계시다.’는 말은 실제로 존재한다, 현존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은 보이는 현존보이지 않는 현존의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1독서)’.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복음).”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제자에게 나타나시는하느님은 보이는 현존의 임마누엘 하느님 모습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2독서).” 여기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보이지는 않지만만물 안에서 만물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복음)”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제자들의 복음 선포에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현존의 임마누엘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이사 43,8 참조) 사람으로서는 하느님의 보이는 현존이나 보이지 않는 현존이나 안 보이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달라야 합니다. 육신의 눈이 멀어도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눈은 무엇입니까? 신앙의 눈이란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일을 믿는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이용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상상으로 하느님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만나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하고자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옆에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고 하느님께 이런 저런 말씀을 드릴 수 있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상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심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승천하시지 않았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묶여있는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특정한 시간에서 특정한 사람만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있는 큰 기쁨입니다.

 

종말론 Eschatology

 

인생에서 역설적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묘하게도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희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통과 죽음 없이는 부활이 없듯이 고통이 없는 희망은 없습니다. 고통은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되는 것이 아니고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을 끌어안을 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 / 새로운 것은 / 언제나 /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 겨울 이파리 속에서 / 씀바퀴 새 잎은 자란다. /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 가장 많이 고뇌하고, / 가장 많이 싸운, / 곪은 상처, /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 희망은 /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 희망의 바깥은 없다.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종말론은 고통과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죽음 너머 희망을 볼 수가 없습니다. 구원자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죽음의 끝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망이 되고 목적이 되는 것이 종말론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하나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주님 승천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심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이요 목적인 주님을 언제 어디서나 항상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안정시키고 우리 영혼을 충족시킵니다.

 

인생은 고통과 친구하면서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승천하시고 우리 삶 안에서 현존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승천하신 주님과 함께 승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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