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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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08:07:30)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1독서 신명 4,32-34.39-40

2독서 로마 8,14-17

복 음 마태 28,16-20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위격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구분되면서 본성으로는 하나인 삼위일체 하느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 되는 교리로서 성부는 본래부터 계시는 분이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온 분이며, 성령은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나온 분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삼위일체 신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삼위일체 신비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고심을 하다가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바닷가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 놓고 조개 껍집로 바닷물을 구덩이에 퍼 넣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 이 바닷물을 이 구덩이에 퍼 넣으려고요.” “아니, 이 무한한 바닷물을 어떻게 그 작은 구덩이에 다 퍼 넣을 수 있다는 말이냐?”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고민에 대해 영감을 받습니다. ‘사람의 작은 머리에 하느님의 무한한 신비를 다 담을 수가 없구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믿음은 다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보여야 믿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때로는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느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하느님은 보이지도 않고 때로는 불합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런 말을 합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삼위일체 교리는 사람의 능력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을 다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앙은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지적인 탐구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지만 믿음의 실천으로 만날 수 있는 분입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신비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행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입니다. ‘실천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 2,26).’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의 믿음 생활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명령하는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라고 촉구합니다. 무릇 법이라는 것은 사회적 일치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인 말씀을 잘 지키면 하느님과 일치가 됩니다. 2독서는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되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일치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복음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방에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성사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 생활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비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하면서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삼위일체 신비를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라는 사제의 기도는 삼위일체 신비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을 요약해 놓은 사도신경 역시 삼위일체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가다 보면 어느 덧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됩니다. 용서가 어려우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용서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치를 이루는 성령께서 오묘한 방법으로 용서가 이루어지게 해 주십니다. 유혹에 빠졌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고통을 겪고 있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시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호를 그으면서 죄로 분열된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고, 불화로 갈라진 이웃과 하나가 되며, 마침내 아빠,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이리하여 부족한 우리 인간도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 안에 살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일체가 되는 하느님의 사랑은 결국 죄로 인해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 영혼을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기 위한 것 즉,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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