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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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08:18:01)

연중 제31주일

 

1독서 신명 6,2-6

2독서 히브 7,23-28

복 음 마르 12,28ㄱㄷ-34

 

 

율법 학자가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1독서에서도 역시 같은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평생토록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그분의 모든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오래 살 것이다.”(1독서)

 

하느님을 사랑이십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가장 큰 사랑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랑입니다. 참하느님이고 참사람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제물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공로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2독서)


어떻게 온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을까요? 하지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하지도 못할 힘든 일을 시켜놓고 즐기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대화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의식하는 것이고 의식할 때 비로소 서로에게 존재하게 됩니다. 함께 있어도 의식하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실까요? 하느님은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받아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이사 43,4).’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살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해서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비를 내려주십니다.’(마태 5,45)

 

하느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 조건 달지 말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죄가 많아서’, ‘나는 신앙이 없어서’ ‘나는 기도를 못해서등등의 조건을 붙인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조건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죄가 있으면 죄가 있는 대로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가 잘 하는 만큼만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똑 같이 사랑해 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일상의 삶을 통해 자주 자주 대화하고 어느 때나 대화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엄마에게 하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야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들에 대해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엄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만약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일상의 삶 안에 포함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육화(肉化 incarnation)의 신비는 일상의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일상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곳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을 가지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심에 감사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밤에 잠을 잘 때도 하루를 잘 마치게 해 주심에 감사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도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또한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말씀 드리고,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말씀 드려야 합니다. 실수를 했으면 실수를 했다고 말씀 드리고,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었다고 말씀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일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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