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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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11:07:14)

연중 제32주일

  

1독서 1열왕 17,10-16

2독서 히브 9,24-28

복 음 마르 12,38-44

 

불교의 현우경(賢愚經)은 13권 62품으로 구성된 경전입니다. 이 경전 안에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 이란 부분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왕과 대신, 장자들이 부처님 계신 곳을 등으로 밝혔다. 그 말을 들은 난타도 등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 꿈을 이룰 수 없었다. 난타는 절실한 마음으로 구걸을 했다. 마침내 약간의 기름을 구하자 부처님 계신 곳에 등불을 밝혔다. 난타의 등은 켤 때부터 위태했다. 사람들은 기름이 너무 적어 곧 꺼질 것이라 했다. 날이 밝자 등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왕과 장자들의 크고 화려한 등도 기름이 다하자 곧 꺼졌다. 그러나 하나의 등불은 여전히 밝게 타올랐다. 난타가 올린 등불이었다. 그날 당번인 목련이 세 번이나 끄려했으나 불은 더욱 밝게 타올랐다.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했다. 이 등불은 비록 약하지만 여인의 착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밝힌 불이어서 바닷물을 쏟아 부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 오신날 자주 듣게 되는 '빈자일등 장자만등' (貧者一燈 長者萬燈) 말의 출전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탐욕과 자만이 가득차 있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엄하게 경고를 하십니다. 소박한 사람들의 헌금으로 부유함을 누리는 사람들이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나 차지하고, 잔치 집에서는 윗자리를 즐기고,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기도를 하고... 결국에는 엄중하게 단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12:38-40 참조) 그리고 복음의 중간에서는 가난한 여인의 예를 보여주시는데 독실함과 함께 시린 느낌을 받게 됩니다. 헌금함에 마지막 한닢을 떨어뜨린 것이 마치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회당 안에서 희생을 당한 사람들 편에 서서 힘을 실어주시지만,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가난의 고통을 기뻐하신 것은 아닙니다. 가난은 극복해야 하지만 사람들이 악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리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춘주전국시대에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이 생겨났고, 우리 역사 안에서도 조선시대에 동학의 접주였던 전봉준은 가렴주구를 일삼던 고부 군수 조병갑을 성토하며 민중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렇듯 가난은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조적인 형태일 때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지난 주일의 복음의 끝부분에 예수님께서 '첫째 가는 계명' 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코 12:34)고 격려하시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또 다른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호되게 야단을 치십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번 주의 비난 받는 종교지도자와 지난 주의 격려 받는 종교지도자 사이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으로 부터 격려받는 종교지도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실제적인 사랑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였기 때문입니다. “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마르코 12:33) 이 말을 풀어본다면, 비난 받는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보다는 성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고, 격려 받는 종교지도자들은 성전보다는 사람에 관심을 두는 사람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여인들과 불쌍한 아이들성전세와 희생제물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가는 지름길 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회당 어느 곳에나 쿠파(kuppah) 라는 헌금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헌금함은 무려 13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9개는 '성전세나 희생제물' 을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 4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 '음식기금', '의류기금', '장례기금' 그중 마지막 헌금함은 '자발적인 봉헌'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헌금은 의무이고 헌금하지 않으면 소유물을 압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헌금함에 들어가는 구멍은 깔때기 처럼 생겨서 그 구멍을 통해서 떨어뜨린 돈이 내부에 있는 헌금함 속으로 굴러 들어가는 구조이었습니다. 당시 화폐는 종이돈은 없었고 오직 동전만 통용되던 시절이었으니 돈이 헌금함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로 헌금의 액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여인이 돈을 넣었을 때 가볍게 땡그랑, 땡그랑 두번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헌금함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여인을 무시하는 분위기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전의 소리보다 여인의 마음을 보시고 감동하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결코 과부의 재산을 직접적으로 등쳐먹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묘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 부추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이 여인의 궁핍을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봉헌, 그 봉헌에 담아 넣은 사랑과 희생을 들여다 보신 것입니다. ‘빈자일등 장자만등의 여인 난타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겸손한 희생과 마음을 얹은 사랑이 하느님을 우리 곁으로 모셔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종교 지도자가 어떤 마음으로 신자들을 이끌어야 하는지그리고 일반 신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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