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Views : 545
2019.03.08 (08:06:39)

사순 제 1주일

 

1독서 신명 26,4-10

2독서 로마 10,8-13

루 카 4,1-13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만찬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 전 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말하며 이 기간 동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집중하게 됩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 동안 재를 지켰고(탈출 34,28), 엘리야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 산에 갈 때 40일을 걸었습니다(1열왕 19,8). 그 외 죄로 물든 세상을 정화하기 위한 노아의 홍수 40(창세 6-9),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한 광야 생활 40(탈출) ,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단련과 정화의 기간을 나타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신 것은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련과 정화의 과정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물론,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단련되고 정화될 필요가 없지만 죄인과 똑 같이 세례를 받으신 것처럼 죄인들과 똑 같이 단련과 정화의 과정을 겪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함께 사시는 육화의 삶을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의 유혹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는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라는 표현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진리의 길은 돌에서 금을 걸려내듯이 시련을 겪는 길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고통과 시련을 피하는 길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광야의 유혹을 우리도 삶으로서 겪어내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전제해야 하는 진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없는 고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머리로는 이해 안 되더라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주어지는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밤이 되고 낮이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변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을 우리는 거부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자연 현상이자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은 자연 현상과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가지가 꺾이는 것처럼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여 합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광야로 나아가는 예수님과 일치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겪으신 광야의 유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 ‘돌더러 빵이 되라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본능적 욕구에 대한 유혹입니다. 본능적 욕구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물불 가리지 않고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유혹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런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본능적 욕구가 인생의 목적인양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괜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쳐도 용인되곤 합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요?

 

둘째,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갖기 위해 악마 앞에 경배하라는 유혹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명예욕과 권력욕입니다. 겉으로 대 놓고 명예욕과 권력욕을 탐한다고 하지 않지만 교묘한 방법으로 그 욕구들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자존심은 그 욕구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것이기 때문에 남으로부터 인정받지 않으면 화가 나고 못 견딥니다. 그래서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합니다.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유혹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봐야 믿겠다는 것이 이 유혹입니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험실의 연구처럼 믿음을 확인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다른 데도 인간의 생각대로 하느님을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게 천사들이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광야 유혹은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시험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때로는 인간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 큰 은총을 주기 위함입니다.

 

1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 어떻게 하느님께 경배를 드려야 할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을 주님 앞에 놓고 경배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삶 안에서 거둔 수확물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고 경배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수확물은 바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어서 얻는 영적이고 실질적인 수확물이어야 합니다. 본능적 욕구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명예욕과 권력욕에 휘둘리지 않는 것, 하느님을 삶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광야에서 유혹 당하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어 부르는 사람이며 구원 받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2독서)

 

No. Subject Nick Name 조회 Registered Date
567 [부활 제6주일] 5월 26일
ccdjsj
399 May 25, 2019
566 [부활 제5주일] 5월 19일
ccdjsj
405 May 17, 2019
565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5월 12일
ccdjsj
408 May 10, 2019
564 [부활 제3주일] 5월 5일
ccdjsj
422 May 03, 2019
563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4월 28일
ccdjsj
441 Apr 26, 2019
562 [주님 부활 대축일] 4월 21일
ccdjsj
461 Apr 19, 2019
561 [주님 수난 성지 주일] 4월 14일
ccdjsj
489 Apr 12, 2019
560 [사순 제5주일] 4월 7일
ccdjsj
512 Apr 05, 2019
559 [사순 제4주일] 3월 31일
ccdjsj
514 Mar 29, 2019
558 [사순 제3주일] 3월 24일
ccdjsj
561 Mar 22, 2019
557 [사순 제2주일] 3월 17일
ccdjsj
556 Mar 15, 2019
Selected [사순 제1주일] 3월 10일
ccdjsj
545 Mar 08, 2019
555 [연중 제8주일] 3월 3일
ccdjsj
586 Mar 02, 2019
554 [연중 제7주일] 2월 24일
ccdjsj
594 Feb 22, 2019
553 [연중 제6주일] 2월 17일
ccdjsj
619 Feb 15, 2019
552 [연중 제5주일] 2월 10일
ccdjsj
604 Feb 08, 2019
551 [연중 제4주일] 2월 3일
ccdjsj
563 Feb 04, 2019
550 [연중 제3주일] 1월 27일
ccdjsj
545 Feb 04, 2019
549 [연중 제2주일] 1월 20일
ccdjsj
632 Jan 24, 2019
548 [주님 세례 축일] 1월 13일
ccdjsj
757 Jan 13, 2019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