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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주일

 

1독서 이사: 2,1-5

2독서 로마: 10,9-18

복 음 마태: 28,16-20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신자들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전교나 선교라고 불렀고, 그 의미는 복음화된 지역에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지역으로 복음을 운반하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교나 선교 대신 복음화라는 표현을 씁니다. 전교나 선교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복음화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역시 복음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상은 매일 미사 책에 소개된 전교 주일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복음화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다음 몇가지 질문을 마음 속으로 고요하게 대답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기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기쁨 속에 있습니까?

우리 본당 공동체는 기쁨이 충만해 있습니까?

우리 가톨릭 교회는 주변에 기쁨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대답은 그렇다라고 하신 분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누구라도 24시간 365일을 기쁘게 살 수는 없으니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복음화는 내가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까지 끊임없이 내가 복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복음화 입니다. 신자나 수도자나 성직자 예외없이 평생 추구해야 할 노력입니다. 신자율 몇퍼센트 증가 또는 영세자 수가 몇명 증가 하는 식의 교세를 확장하는 것만이 복음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당 다니면 하는 일이 잘 풀릴 거야라는 식의 감언이설로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성당에 다니는 사람을 보니 삶의 비결이나 삶의 방식이 다르지만 나도 그 비결을 배우고 싶어져서 성당에 다니는 저 사람을 따라서 자발적으로 성당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 복음화입니다. 전단지나 어깨띠를 둘러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소식이라는 말입니다. 기쁜소식하는 것이 福音化입니다. 가정에서도 성당에 다녀온 엄마나 아빠를 가족들이 외면한다면 기쁜 소식이 아닌 것이지요. 그 누가 기쁜 사람을 기피하려고 하겠습니까? 본당에서도 어떤 사람을 기피하고 싶어지면 그 사람은 이미 기쁜 사람이 아닌 것이지요. 내가 타인에게 기쁜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이 복음화 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과 영광이 드러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당 공동체에서 환영 받지 않는것 같은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보다는 주변 사람의 사랑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보다 주변의 아무개를 우선적으로 의식하는 것이겠지요. 먼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내면 자연스럽게 타인들의 사랑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통해서, 하느님 체험 없이,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마음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기쁜소식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제 2 독서의 말씀을 상기합시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느님께 공로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무엇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무엇을하셨고 나는 단순히 그 도구로써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나는 그 도구입니다. 우리 삶을 한편의 영화로 비유한다면 하느님이 주연이시고 나는 그저 엑스트라입니다.

 

지난 주에는 여러분들이 수고하셔서 대추열매를 수확 하였습니다. 그것 역시 하느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노동에 그치지 않고 거룩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지향으로 그 일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동기의 순수화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순수한 동기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의식하게 될 때만 동기를 순수하게 정화시켜 갈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그런 기회를 넓혀나가는 것이 복음화의 시작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일들은 대추나무 수확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같은 일이어도 지향에 따라서 하느님께 공로가 될 수도 있고, 세속적인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거나 세속적인 이익을 꾀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를 전교의 대상으로 할 것인가? 누구에게 우리 성당에 가자고 초대할 것인가? 보다 먼저 할 마음가짐은 내 자신이 복음화 되어있는가? 내가 부조리한 환경과 불편한 상황 안에서도 기쁜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하고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의 너그러운 도우심을 청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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