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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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06:57:41)

연중 제32주일

 

1독서 2마카 7,1-2.9-14

2독서 2테살 2,16-3,5

복 음 루카 20,27-38

 

인간적으로 볼 때 죽음은 절대적인 절망 상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죽음은 희망의 문입니다. 천국의 문이자 영원한 생명의 문이 죽음입니다.

 

부활은 죽음과 함께 있습니다. 동전의 앞뒤와 같이 죽음과 함께 붙어있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 신앙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지만 부활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영원한 절망입니다.


1독서에서 일곱 형제가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내는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 부활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온 세상의 임금께서는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 7,9)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아무리 힘들더라고 그것은 지나가는 것일 뿐,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오직 영원한 희망을 주실 수 있습니다(2독서 참조).

 

오늘 복음에서 보는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직선적인 시간관념으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직선적인 시간관념으로 사는 사람들은 현세만 중요할 뿐 내세에 대해서는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세에서 부자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고 현세의 가난은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유대민족에는 형이 자손이 없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대를 잇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풍습에 근거해서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일곱 형제를 남편으로 둔 여인은 부활 후 도대체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은 일도 없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죽음 후에 누리게 될 부활, 영원한 생명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이때의 시간은 오직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 죽을 때의 시기는 다르지만 죽고 나서는 오직 하느님 앞에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로서 함께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는 죽음이 없고 모두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을 고백합니다. 육신의 부활은 현재 우리의 육신의 부활이 아니라 다른 양태의 부활입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코린 15,4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문이 잠겨있는데도 그냥 들어오시고 뼈와 살이 있음을 보여주시며 제자들과 함께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여기 저기 갑자기 나타나시고 바라처럼 사라집니다. 우리의 육신 상태로는 불가능하지만 분명히 육신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육체적 한계 때문에 경험하는 세계도 한정적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더 넓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나 어려움, 기쁨, 즐거움 너머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질 때 우리 앞에 주어진 문제를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으로만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더 큰 세상을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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