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시오 묵상법

 

기도 준비 : 15 정도

기도할 장소, 기도할 자세 그리고 언제 어느 정도 것인가를 정하고 기도 요점(3 정도) 택한다. 기도 준비가 끝나면 준비기도 한다. 아침 묵상일 경우에는 잠자기 전에 기도 준비를 하고 일어나면 즉시, 기도 요점을 상기한다.

- 기도 장소: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침묵 속에서 기도할 있는 조용한 장소를 택한다.

- 기도 자세: 앉거나 무릎을 꿇거나 눕거나 혹은 서서도 있지만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어떤 자세를 취하든지 기도가 끝날 까지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 언제: 편안하게 기도할 있는 시간이라면 어느 시간대라도 괜찮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바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 어느 정도: 20분에서 1시간. 어느 정도 기도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시간을 지키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은 하느님께 시간과 생각과 나의 존재를 드리는 하나의 봉헌이다.

- 준비기도 : 기도 준비가 끝나면 아래의 기도문을 바친다.

저의 모든 의향과 행위와 노력이 오로지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이 되게 하소서.

기도 시작

1. 하느님 현존을 상상함

하느님 앞에 있음을 상상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껴본다. 주님의 기도 한번 있는 시간 정도면 된다.

2. 줄거리

기도하고자 하는 내용의 줄거리를 떠올린다.

3. 장면 설정

본격적으로 묵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성경에서 묘사되는 장면을 상상으로 설정한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 어디신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상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마르코 2, 13-17 예로 들어 보자. 13 예수께서는 호수로 나가셨다.호수의 크기를 보고 잔잔한 수면을 보고 호수 주위의 돌이나 모래 호수를 들러 산과 마을들을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다. 5 이내로 하면 충분하다.

4. 구하는 은총

묵상에 필요한 특별한 은총을 청한다. 구하는 은총은 묵상할 내용에 맞추어 청한다. 예를 들면 부활에 대해 묵상할 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즐거워함을 청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에는 예수님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인식을 청한다.

5. 묵상

기도요점 3 ( 3개가 아니라도 괜찮다)

: 마르코 2: 13-17

1) 13 예수께서 가르치셨다

어떤 내용을 가르치셨을까? 하늘나라에 관해서? 하느님 나라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과 관련이 있는가? 자녀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부부간의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분쟁이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나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 질서나 법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등등. 예수님께서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모른 척하셨을까? 사람들은 병의 치유 아니라 마음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예수님께 호소하고 질문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현실적인 어려움 - 죄짓고 고통당하는 안을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안고 있는 모든 갈등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바로 현실로부터,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하늘나라는 너희 마음에 있다는 말씀은 구원은 인간의 일상사 안에서 시작됨을 뜻하는 말씀이다.

예를 보자. 세금을 어떻게 내어야 하는가? 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예수님은 답하신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세금을 내어라는 말씀이다. 부부간에 있어서 아내는 남편하고 순종하고 남편을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현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어려움이 있을 예수님께 물어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을 모른 하실 리가 없다.

2) 14 예수께서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부르셨다.

레위가 어떻게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하게 되었을까? 레위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것이고 그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또는 이전에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거나 보게 되었을 신비에 대한 갈망, 영적 본능이 자극되었을 것이다. 영적 본능은 순수한 사람일수록 일어난다. 무질서한 애착이나 세속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영적 본능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느님을 향한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그리움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들의 귀소 본능과 같은 것이다. 자기가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바로 영적 본능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모습을 통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세속적인 온갖 생각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나 하는가? 예수님의 모습에서 창조주의 모습을 보는가? 우리 자신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3) 16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제자들에게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된 노릇이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돌아 작은 아들(루가 15:11-25)에서 아들을 연상시킨다. 아들은 작은 아들에게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마땅해 투덜거린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도 종교적으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선민의식과 편견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된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선민의식, 자기들처럼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만 의인이고 자기들 생각으로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취급하는 편견, 예수님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질책하신다. 예수님은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죄인들의 안으로 들어가신다. 나에게는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 같은 마음은 없는가? 나는 직업이 좋지 않다고 해서, 신분이 낮다고 해서, 배웠다고 해서 남을 무시한 적은 없는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면서 타종교 신자들, 신앙인들은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요점을 묵상할 사건 안으로 들어가서 사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이 행동하는 것을 본다. 또는 자신이 사건의 일부가 되어본다. 사건의 부분을 차지하면서 안에서 말하고 행동해보자. 사건 안의 사람들과 직접 어울려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자신의 상상력으로서 성경 속의 인물이 되어 그들의 감정을 느껴보자.

메마름의 시기라도 기도에 충실히 하다보면 갑작스런 은총으로 축복을 주시기도 한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분심이나 잡념으로 뒤죽박죽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자주 하느님께 기도할 있도록 도와 달라고 청하라. 하느님께 온유한 마음과 깨달음을 달라고 청하라. 어떤 구절에서는 많은 의미를 발견하지만 어떤 구절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지루함 속에서도 때로는 고요히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열왕기 19 11-12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 야훼께서는 바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고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고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고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 왔다. 기도는 성경의 어느 구절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 구절 안의 어느 단어나 문장의 의미나 가치가 나의 안에 조용히 스며들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6. 담화

성모님과 예수님,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과 담화한 주님의 기도 마친다. 담화는 우리로 하여금 성모님, 예수님,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갖게 준다. 담화는 친구끼리 서로 말을 주고받듯이 또는 윗사람에게 무엇을 말씀드리듯이 있다. 자기 사정을 이야기 하거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거나 또는 자기 사정에 대해 의견을 구하듯이 한다.

 

기도 성찰

장소와 자세를 바꾸어 15 정도 한다.

성찰에 도움이 되는 질문들

- 기도 준비는 성실하게 했는가?

-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으며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는가?

-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잠심했는가?

- 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가?

-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가?

- 특별히 자극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기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땠는가?

-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 되풀이 기도할 어떤 부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점검하여 잘못된 점을 발견하게 한다. 이로써 사고의 질적인 변화가 가능하고 창의력이 높아질 있다.

영혼을 채우고 만족시키는 것은 많은 것을 아는데 있지 않고 어떤 것을 내적으로 느끼고 들이는 데에 있다. (영신수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