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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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07:49:39)

부활 제6주일

 

1독서 사도 10,25-26.34-35.44-48

2독서 1요한 4,7-10

복 음 요한 15,9-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사랑하셨다는 뜻일까요?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내 것이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이 나의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비밀이 없다는 것이고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11) 그러므로 성자 예수님도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부와 성자가 하나가 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성령이 발하시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가 되면 완전하게 되는 것이며, 완전하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고,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되는 사랑은 충만하기 때문에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 것도 하느님과의 사랑의 충만함 때문이었다(마태 4,1-11 참조). 모든 것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랑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좋고 나쁘고 구별이 없이 모든 것이 똑 같이 동등하게 보입니다. 그것이 무조건적인 하느님 사랑, 무한한 하느님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의인에게나 죄인에게나 똑 같이 해를 비추어 주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마태 5,45).

 

성부 아버지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것이 나의 것이 되고 나의 것이 예수님의 것이 된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을 모두 나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이 하나가 되듯이 성자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신비, 그 신비 속에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친구는 대등한 관계입니다. 친구인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면 우리도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고 친구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이 되고 하느님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었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죄의 유혹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까요?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분리에서 옵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원래는 하느님과 하나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과 분리시키는 것은 죄입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과 분리된 인간은 끊임없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그 길을 찾지 못해 심리적인 병이나 각종 중독증을 앓게 됩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야만 비로소 인간은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지만 사랑을 하면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하느님은 사랑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의 시초입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께로부터 분리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 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2독서)

 

우리가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의 주도권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알파요 오메가인 하느님, 시작과 마침이신 예수님, 처음과 끝인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나를 사랑하신다.”, “주님께서는 먼저 오늘 하루를 시작하신다.”, “주님께서 먼저 내가 할 일을 시작하신다.”

 

기도는 우리 삶의 시작이요 마침인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참행복은 우리 뜻이 이루어질 때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주님의 뜻은 사랑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하느님께서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먼저 사랑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먼저 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피조물 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1독서)

 

사랑은 먼저 하는 것, 사랑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 사랑은 내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방식입니다. 먼저 하고, 자발적으로 하고, 내어 줄 때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됩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먼저, 자발적으로, 내어 주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사랑의 방식대로 살면 세상만사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삶이 고달픈 이유는 이 사랑의 방식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눈치를 보면서 나중에 하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하고,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고달픈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먼저, 자발적으로, 내어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발적으로, 내어주는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 역시 먼저, 자발적으로, 내어주는 방식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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