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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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6 (06:58:19)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1독서 사도 5,12-16

2독서 묵시 1,9-11.12-13.17-19

복 음 요한 20,19-31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고통 받으시고 죽게 하시고 그리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이처럼 자비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자비와 사랑

 

자비는 베푸는 것이라고 하면 사랑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지만 사람이 하느님께 자비를 베푼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사람도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자비는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실 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 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복음)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잡혀 죽지 않을까 매우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도망갔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매우 우울한 상태입니다. ‘저녁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는 것은 제자들의 심적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가운데로 오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처지에서는 평화를 누릴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자비가 평화입니다. 평화는 이렇게 외적 내적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거저 주시는 자비의 선물입니다. 제자들이 평화를 받을 조건이라면, 단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있다.’ 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는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 안으로 오시어 함께 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리고 부활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곳은 바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이 말씀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우리도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사명은 용서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곧 이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용서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39) 용서는 성령을 받는 그릇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부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반면에, 용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를 구속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영혼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죄책감, 부끄러움, 열등감, 비굴함, 불안감, 절망, 좌절, 실패, 자신 없음 등등,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용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나 용서는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조건이 용서라는 말은 용서할 마음을 가져라, 용서할 결심을 하라.’ 는 뜻입니다. 용서할 마음을 가지고 용서할 결심을 하는 것은 성령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으면 불가능하게 생각되던 용서도 가능해집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제자들이 평화와 성령을 받고 생명을 누리게 됨은 단지 예수님 이름으로 모였다는 이유입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스카리웃 유다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나, 예수님의 수난 앞에서 도망친 다른 제자들이나 다 같은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가운데 평화의 선물이 있고 성령의 은총이 있으며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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