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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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08:03:38)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1독서 1마카 2,15-29

복 음 루카 19,41-44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복음)

 

1독서에서 마타티아스는 왕명을 따르면 편하게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고 편하게 사는 것은 참된 평화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복음의 시대적 배경은 70년경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는 상황입니다.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복음)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입니다. 곧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루살렘입니다.

 

우리 몸은 하루 하루 노쇠해 가고 결국 죽음으로 파멸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살기 위해 지금 평화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평화를 주는 것이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식입니까? 권력입니까? 그 무엇도 아닙니다. 평화를 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킬 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평화입니다. 우리는 약해서 쉽게 유혹에 무너집니다. 반복해서 죄를 짓고 악습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합니다.

 

우울할 때는 충분히 우울해야 하고 후회가 들 때는 충분히 후회해야 하고 부끄러울 때에는 충분히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것은 죄로 인한 벌입니다. 벌은 보속입니다. 보속은 영혼을 정화합니다.

 

어느 누가 완벽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까? 몸부림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고 우울하고 부끄러운 것은 거짓 평화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습니다. 넘어지고 상처받아도 괜찮습니다. 신앙을 위해 투쟁하는 거기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눈먼 이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어도 더욱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그의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에 의지하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이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보호자입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엄마의 품속에 안기기만 하면 무섭지 않습니다.

 

사람많은 식당에서 성호 긋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더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식사 후 기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신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소원을 들어주실 수도 있지만 꼭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해 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눈먼 이가 눈을 뜨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다면 기도가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뜻대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주님의 자비는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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