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기현이 부부와 함께 남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가 사는 과천에서 남해까지 5시간여의 거리는 끝도 없이 이어진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우리나라의 산을 실컷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중간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인 전동 성당에 들렀다. 곡선미가 아름답고 내부 장식도 화려한 성당의 제대 앞에 앉아있으니 옛 선조들의 신앙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성당은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주의 명소가 된 한옥 마을은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옛 거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한복 차림의 사람들로 거리는 화려한 색감의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다. 전통 한복이 아닌 반짝이와 화려한 문양의 개량 한복이 세계화와 더불어 편안한 모양으로 바뀌어 이런 모습을 접한 나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지만, 추억만들기의 한 소품으로 한복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주에 이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남해 대교의 쭉 뻗은 다리는 남해의 잔잔하고 고혹적인 바다 위에 걸쳐져 있었다. “보리암”이라는 절에서 바라다본 남해의 전경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는 불자들의 모습에서 숙연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의 소개로 이틀을 묵은 작은 어촌 마을 “금음리”의 집주인은 천주교 신자인 부부가 소일거리로 사는 집을 가끔 빌려주고 식사도 준비해 주었다. 우리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세 지긋한 두 분은 좋아하시며 장어 시래깃국과 모듬 생선구이, 전을 비롯한 푸짐한 아침상을 배불리 먹게 해 주셨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맞이한 해돋이는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생전 처음 해돋이를 보는 듯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도 변함없는 친구와 빠듯한 중국 출장 일정 중에 시간을 내준 남편과 아이린이 함께한 이번 가을 여행은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으로 추억이라는 앨범 속에 고이 간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