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행복을 얻기 위한 조건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 10-12)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많이 역설적입니다. 흔히들 세상 사람들이 체험하고, 그들의 정의로 표현되는 행복과는 색깔도 다르고, 내용은 오히려 반대로 정의되는 것 같습니다. 위의 말씀 앞부분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이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이웃을 위한 희생이 과연 쉬울까요? 오로지 남을 위해서는 무조건 참아야하고, 정의롭지 못해도 때로는 눈을 감아주어야 하는 행위들을 주님께서는 행복을 얻는 지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철학자가 나름대로의 행복이론을 전개하는데, 동시에 던진 질문이 있었습니다. 행복은 이러 이러한 것인데, “당신이 말하는 행복과 지금 삶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같습니까?” 우리 각 사람안에 이미 그 해답이 오래전부터 머물러 있어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행복은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이고, 내손으로만 쥐고 싶은 것이고, 또 한없이 머물고 싶은 소중한 가치이고, 생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아직 이루어 지지는 않았지만 미래에 이루고 싶은 목표, 희망을 생각하며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어가는 순간도 행복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은 이것입니다. 라고 정의되는 주관적 이론에 또 구속되지 않을 만큼의 자신의 체험, 자기만의 정의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의 가르침, 어느 사상가의 이론, 경험 등등을 머릿속에,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가? 각자의 기준과 생활의 지침이 한결같지는 않겠지만 앞에서 주제로 초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온전히 당신 자신의 삶, 온전한 봉헌이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행복과 자유로움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아주 작은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호함과 강직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룹니다. 어떤 태풍에도 뿌리까지 뽑히지 않을만큼의 유연함이 그림자로 동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체험들, 관계, 삶의 물음들안에서 진정한 내 삶을 살아가기위해서는 오로지 하느님과 나만의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행복의 의미 역시 세상이 답하는 의미와 내안에서 올라오는 것이 일치를 이루지 않고,어색한 부조화를 보이는 것은 아직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무르익지 않아서 일 수 있습니다. 또 한주간 더 큰 호흡과 더 깊은 심연의 고요로 여행하는 은총의 주간을 시작합시다. 여기서 행복은 세상적 가치의 기준으로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독서
탈출 3, 1-12 모세의 소명
집회 14, 20-27 지혜로운 이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