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속을 헤엄치다 만나 성경 문구가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내게 하느님은 죽은후에 갈 수 있는 다른 세상에 계신분 혹은 사후에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여겨져왔다. 그분이 허락하신 하루하루와 모든 피조물 사이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 이 사실을 잊고 지낸다. 사는일에 급급해 정신없이 달리다 문득 발목을 잡는 양심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휘청거릴때 그제야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는다.
하느님은 얌심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내 삶에 관여하시고 다시금 방향을 잡아주시는 길잡이같은 분이시다. 그래서 늘 나의 기도는 죄송한 마음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일종의 양심 고백의 순환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얌심에 걸리게 했을까? 솔직히 고백한다. 죽은 후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또한 일상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구분 짓는 오랜 습관으로 인해. 그러다 보니 내 속의 하느님을 너무 근엄한 분으로 만들어버려 내 스스로 하느님과의 거리를 넓혀놓고 말았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이 성경의 한 귀절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구분짓고, 보이는 모든 것에 매달려 공간과 시간에 구별없는 하느님 나라를 알지 못하고 사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준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처했을때 억울함과 함께 얼마나 많이 하느님을 원망했는지? 끊임없이 내 속에서 솓아나는 왜? 라는 질문속에 허우적 거리다 결국은 이 또한 인간의 머리로는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포기해 버리곤 하는 하느님,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느님, 때론 너무나 무심했던 하느님,,,,
기쁨에 들뜨는 순간, 무너지는 슬픔에 어찌할 바 모르는 순간,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하느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심을 잊지 않고 느낄 수 있다면 내 삶의 하루하루, 매 순간이 얼마나 따뜻할까?
왜 나는 일상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잘 느끼지 못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