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너 살쯤 되었을 무렵 세 발 자전거를 타고 찍은 낡은 흑백 사진이 한 장 있다. 내가 살던 그 흑백 사진 속에는 온갖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나던 둑 길과 봄이면 얼었던 땅을 헤집고 피어나던 냉이와 온갖 봄 나물의 향긋한 냄새 , 여름이면 하늘을 찌를 듯 울어내던 매미소리, 어스름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노란색의 은은한 향기를 날리던 달맞이꽃, 겨울이면 꽁꽁 얼은 냇가에서 썰매를 타며 마냥 즐거웠던 동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동네를 한바퀴 돌며 문득 쳐다 본 하늘엔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 딸 아이의 물음에 “ 글쎄,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지.” 하고 궁색한 대답을 하며, 이 아이들은 나중에 나만큼 나이가 들은 후에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문명의 이기 속에 방치 된 아이들, 필요 이상으로 깨끗하고 조심스레 키워지는 요즘의 아이들이 새삼 가엾게 느껴진다.
그 땐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손으로 그려 오린 종이 인형으로도 재미있고 행복 했었는데…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태어난 나는 어릴적부터 여자아이들이 하는 고무줄 넘기, 소꿉장난, 공기놀이등은 거리가 멀고 늘 남자아이들 놀이만 했었다. 늘 나를 따라다니며 호칭 마저 내가 부르는 식으로 형을 오빠로, 누나를 언니로 부르던 두 살 아래 남동생과 어찌나 거칠게 놀았는지 양 쪽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고,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 무렵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질 때까지 집에 돌아 올 줄을 몰랐었다.
남자 아이 못지 않게 극성 맞았던 나는 어머니가 며칠을 별러 목욕을 시켜 놓고 나면 동내 개울가에 나가서 진흙을 잔뜩 묻혀 들어오고, 같은 동네 살던 왕숙이네 사나운 개한테 엉덩이가 물려서 들어와 난리를 냈고, 오빠 따라 쥐불놀이 나갔다가 검게 그을려 들어 오는둥 여자 아이들 놀이에선 으레 깍두기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남자 애들과는 힘을 겨루었던 씩씩했던 나의 어린 시절 …..
요즘 들어 자꾸만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밀려 오는건 왜일까?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정신 없이 내 딛었던 지난 날 들. 한 숨을 돌리기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데 문득 내 발목을 잡아 대는 그 무엇인가에 멈짓거려 진다. 괜실히 이 계절이 주는 감상은 아닌지?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나려 꿈틀거리는계절. 오랫 만에 들여다 본 옛 사진첩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의 네게 선사한 선물쯤으로 생각하련다… 오늘 밤엔 아이들과 함께 하늘의 별을 헤아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