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1독서 이사 60,1-6
2독서 에페 3,2.3ㄴ.5-6
복 음 마태 2,1-12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이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이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공현(公現, Epiphany)’이란 ‘나타내 보여 준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이방인 동방 박사들에 의해, 예수님이 온 인류에게 구세주로 드러나신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석사 다음의 학위인 박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자, 점성술가 또는 꿈 해몽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마고스'를 번역한 것입니다.
1, 2독서에서 말하는 ‘민족들’, ‘임금들’이라는 말은 구원의 보편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독서(이사 60,1-6)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2독서(에페 3,2-6)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 몸의 지체가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 민족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는 동방박사 세 사람은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성서 말씀을 알고 믿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별을 보고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이 유대 땅을 넘어서 모든 민족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제각기 아기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첫 번째 예물은 황금(黃金 gold)입니다. 황금은 빛나고 귀한 보석으로서 성서적 의미로 왕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만왕의 왕, 영원한 왕이심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예물은 유향(乳香 frankincense) 입니다. 유향은 그윽한 향을 내기 때문에 신에게 제사 드릴 때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느님, 완전한 인간입니다. 아기 예수님에게 유향을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 즉, 예수님이 완전한 하느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예물은 몰약(沒藥 myrrh)입니다. 몰약은 마취제로 사용하거나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는 약품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몰약은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의 세 가지 예물-황금, 유향, 몰약-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자 인류의 구세주이지만 힘으로 이끌어가는 왕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 즈음에 자주 인용되는 헨리 반 다이크가 쓴 ‘넷째 왕의 비밀 The forth wiseman’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름은 가스팔, 멜키올, 발타살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라고 합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의 이름은 아르타반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동방박사 네 사람이 별을 보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새로 탄생한 왕 중의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길잡이는 오직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작은 별뿐, 행선지는 그들도 알 수 없었습니다. 세 명의 동방박사는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가져갔지만 아르타반은 루비 한 개와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가지고 갔습니다.
일행과 조금 뒤쳐져가던 아르타반은 여행 도중에 강도의 습격을 받아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아르타반은 그 사람을 보고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를 여관으로 데려가서 정성껏 보살핍니다. 그 사람의 여관비와 치료를 위해 아르타반은 가지고 있던 루비를 여관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서야 새로 태어난 왕에게 드릴 루비를 불쌍한 사람을 위해 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약간 후회도 되었지만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 루비를 썼기 때문에 왕도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서 급히 다른 동방박사 세 사람을 뒤 따라 갔지만, 그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잡이 별 역시,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아르타반은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찾다가 지친 아르타반은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기도했습니다. “오, 왕 중의 왕이시여, 저는 당신을 뵙기 위해 집도, 친척들도 고향도, 제가 가진 모든 것도 다 버리고 떠나 왔습니다. 저는 이제 낯선 곳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당신을 찾아 제 진귀한 보석을 드릴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해 주소서!” 그는 다시 왕에게 가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도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동행할 친구도, 그의 앞길을 인도해 줄 별도 없었지만 언젠가는 왕을 뵙게 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목이 마르고 피곤하여 지친 아르타반은 우물가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노예들에게 짐을 잔뜩 지워 끌고 가는 노예 상인들도 쉬기 위해 그 우물가로 왔습니다. 노예상인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 틈에 노예들이 아르타반에게 제발 자기들을 이 상인들의 손에서 구해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아르타반은 노예들이 무척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가지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상인들에게 주고 노예들을 모두 샀습니다. 그리고 노예들을 모두 자기들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들이 다 돌아간 후 아르타반은 혼자만이 외롭게 우물가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워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일까? 하지만 왕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잖아!”
사막에 어둠이 내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는 별들이 반짝였습니다. 아르타반은 피곤한 눈으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가 찾던 그 별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왕을 만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타반은 절망감과 서러운 생각에 눈물을 흘렀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르타반아, 너는 늦지 않았다. 세 명의 동방박사들 보다 네가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와 경배해 주었고 내가 태어나고 첫 선물을 네가 주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모든 사람, 특히 죄인, 소외받는 이,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불쌍한 우리 처지를 사랑하시듯이 우리 역시 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해야 합니다. 아르타반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가장 귀한 선물이 됩니다. 우리 각자가 사랑을 실천을 할 때 예수님의 모습이 그 안에서 드러나게 되며 우리는 또 한 사람의 동방박사가 됩니다. 아르타반은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 한 해를 살면서 우리는 아르타반 처럼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남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원래 목표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