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
1독서 요나 3,1-5.10
2독서 1코린7,29-31
복 음 마르 1,14-20
오늘 독서와 복음은 회개에 대한 내용입니다. 회개(悔改)란 무슨 뜻일까요? 회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야(metanoia)’는 ‘생각을 바꾸다’, ‘달리 생각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 란 ‘하느님을 향하여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독서에서 니느베 사람들의 회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요나 예언자가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고 외치자 니베네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어 악한 길에서 돌아섭니다.
2독서에서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라.’ 라고 촉구합니다. 이 말은 ‘세상적 생각으로부터 초월하여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라’는 뜻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생각을 바꾸어 즉각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행동은 생각에 따라 움직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회개는 큰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매순간 이것을 할 것인가 저것을 할 것인가 선택하면서 삽니다. 같은 선택이 반복되면 그런 사람으로 되어갑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택하는 습관이 몸에 익으면 자연적으로 회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문제는 그 작은 선택을 소홀히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소홀하면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는 작은 것 안에 들어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31-32)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것부터, 천천히,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어떤 신부님이 안식년을 맞이하여 고숙도로 휴게소의 청소부를 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들었습니다. 대소변이 묻은 변기를 닦아내고, 발자국 난 바닥을 걸레질하고, 더러운 쓰레기통을 비우고… 하루 종일 허리 펼 틈도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강론대에서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청소부로 일해 보니까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이 작은 행동이 사랑의 실천이자 회개의 삶입니다. 미운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자꾸 미운 생각이 떠오르고 기분이 우울해집니다. 밉다 밉다 라는 생각을 자꾸 할 것인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힘들다 힘들다 라는 생각을 자꾸 할 것인지 어차피 해야 할 일 최선을 다하자 라는 생각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먼저 우리 자신이 회개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기는 미끼 때문에 낚이지만 사람은 회개의 모습을 보일 때 모여듭니다.
예수님 주위에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단지 병을 고치거나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가치, 복음적인 삶, 하느님 말씀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부터 하느님 뜻을 선택하는 것이 회개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