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하느님이 자기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기에게 어떤 분인지에 따라서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성전에서 결코 장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하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이 항상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기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는 사람은 성전을 돈 벌이하는 장소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사람은 저마다 감각이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운동을 잘 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 등등. 감각은 어떤 것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훈련을 통하여 길러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고난 감각이 있어도 훈련하지 않으면 무디어지고, 아무리 감각이 없어도 자꾸 반복하면 감각이 길러집니다.
감각 중에 가장 중요한 감각은 신앙 감각입니다. 신앙 감각은 하느님을 알아채는 능력입니다. 살아있어야 감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주신 하느님을 아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신앙 감각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신앙 감각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꾸준히 배우면 길러집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압축 요약해 놓은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려면 꼭 지켜야 합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1독서. 탈출 20,1)는 말로 시작됩니다.
십계명을 굴레로 생각한다면 십계명에 대한 이해가 덜 된 것입니다. 십계명은 질서와 자유를 위한 지침입니다. 산에서 이정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불안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인생길, 구원의 길은 모르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산에 이정표가 있으면 이리 저리 헤매지 않고 걱정없이 걸으면서 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주님의 법이고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화답송. 시편19,8)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기 때문에 인생살이에 생기를 북돋아 주고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하게 해 줍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속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세속의 방식도 자꾸 살다 보면 그 나름 감각이 길러집니다. 그런데 그 감각대로 살면 결국 영혼이 무질서 해지고 자유가 구속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을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예레 17,5)
십계명을 통하여 신앙 감각에 익숙한 사람은 하느님의 어리석음과 하느님의 약함을 자기 삶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2독서. 1코린 1,25)
하느님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고 더 힘이 있는 것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고, 대단한 표징들이 있어야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복음. 요한 3,24)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내 쫓으십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십계명, 주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화답송. 시편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