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
1독서 예레 31,31-34
2독서 히브 5,7-9
복 음 요한 12,20-33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1독서. 예레 31,31)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새롭고 영원한 계약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1독서. 예레 31,33)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양 당사자 간의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 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지만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에 충분할까요?
죄가 없으신 하느님과 죄 많은 우리와는 조건이 너무 맞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죄를 없애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채로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은총을 베푸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우리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그 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계약에 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지켜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2독서. 히브 5,8)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께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과 똑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격체이지만 우리는 결함이 많고 약한 인간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만큼’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머리로만 아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렇게 사셨고, 또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복음. 요한 12,26)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존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죽이면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은 썩지 않는 밀알처럼 혼자 있게 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복음. 요한 12,24)
자존심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는 자존심과 자기 목숨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자기 목숨이 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존심을 죽임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썩지 않는 밀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썩는 밀알은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