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복음. 요한 20,1)
부활은 자유입니다. 주님 부활로 인해 세상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모든 억압과 고통과 죄의 총체입니다. 그렇게 믿었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돌아 가시자 제자들은 자기들도 스승처럼 잡혀 죽을까 봐서 모든 문을 잠가 놓고 숨어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녁에, 두려움에 떨며, 문을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은 무덤에 묻힌 것과 같습니다. 캄캄한 무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유가 구속된 상태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복음. 요한 20,19)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누리는 평화가 아닙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야 누릴 수 있는 평화라면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그러한 평화는 조건적인 평화이며,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평화입니다.
무엇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법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체험이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용서받은 체험이 있어야 용서를 해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안에 미움이 가득한 사람은 남을 미워하게 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무엇을 주어도 불만을 터뜨립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야 먼저 우리 자신이 평화롭고, 그 평화를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거리가 없어져야 누릴 수 있는 평화는 오히려 사람을 어떤 조건에 묶어 두기 때문에 구원의 길에 걸림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참평화로써 어떤 조건하에서도, 설령 인간적으로 보면 평화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1독서. 사도 4,32)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것을 갖지 않아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로서 부활의 신비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복음. 요한 20,22-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며, 어떠한 죄라도 용서해 주시고, 죽은 생명을 영원히 살게 해 주십니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성령께서는 어떠한 사람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죄인이라고 해서 내치지 않으시고, 믿지 않는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받았다는 것은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다 갖춰졌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고, 슬퍼도 행복할 수 있으며, 박해를 받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성령을 받으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2독서. 1요한 5,1)
그리스도는 ‘메시아’, ‘구원자’ 라는 뜻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고,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참하느님이며 참사람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사람이기만 하면 우리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부활하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부활은 죽고 나서 누리는 은총이 아닙니다.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부활의 은총은 지금 여기, 일상의 삶 안에서 살아가는 힘입니다. 죽음은 삶 안에 있고, 삶은 죽음 안에 있습니다. 죽음과 삶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하나이신 하느님으로서 분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하나되는 신비 안에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과 하나되는 신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라고 믿는 믿음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