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1독서 사도 9,26-31
2독서 1요한 3,18-24
복 음 요한 15,1-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복음. 요한 15,5)
“그들은 사울을 없애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1독서. 사도 9,29-31)
사울은 ‘아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내어다가 박해를 하고 예수님의 일을 가로막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나서 예수님의 사도로 거듭납니다.
역설적으로 그가 박해를 한 덕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그의 박해 경험들이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어 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2-23)
우리의 지난 날들의 경험에도 사울처럼 악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부활성야 찬송에서 “오, 복된 탓이여. 아담의 죄로 인해 구세주가 세상에 들어왔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은총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죄 까지도 복이 된다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죄가 복이 되고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을 인간적인 수준에서 생각하곤 합니다. 만약 하느님이 인간과 같거나, 아니면 인간보다 좀 나은 존재라면 그런 하느님에게서 어찌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있으며, 어찌 죽음에서 부활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복음. 요한 15,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콜로 1,16)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떤 죄라도 용서되는 창조가 있고, 죽음에서 부활되는 창조가 일어나며, 영원한 생명으로 창조됩니다.
관건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2독서. 1요한 3,23-24)
계명 중의 가장 큰 계명은 ‘사랑’ 입니다. 첫째 가는 계명은 ‘하느님 사랑’ 이고 둘째 가는 계명은 ‘이웃 사랑’ 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 안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나가 되어라’ 입니다. 주면 하나가 되고 받으려고 하면 분리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님을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랑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하지도 못할 일을 시켜놓고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도와주시고, 못하더라도 봐 주시는 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참 편한 분입니다. 하느님을 겁나는 분, 어려운 분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 말씀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복음. 요한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