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
1독서 사도 2,1-11
2독서 1코린 12,3ㄷ-7. 12-13
복음 요한 20,19-23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복음. 요한 20, 23)
죄의 용서는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오직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으며, 구원은 죄의 용서로부터 시작되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은 어려운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 알아듣는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1독서. 사도 2, 7-8)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은 보이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사시는 보이는 하느님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하느님은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그 첫 사람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사시는 예수님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몸의 각 지체는 머리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성령을 받아라.’, ‘죄를 용서하라.’ 입니다. 사람의 능력만으로 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면 사람이 구원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왜 필요하겠습니까?
용서는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능력, 즉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성령을 믿지 않는 것이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에게서 나와서 나를 통하여 이웃에게 전해지고 그리고 하느님께로 돌아 감으로써 사명을 완수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나가 되는 것이며, 용서는 하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용서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 없이는 용서가 불가능하고 성령 없이는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2독서. 1코린 12,13)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세례는 “성령을 받아라.” 는 말씀에 “예” 라고 응답한 것이며 또한 용서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발이 손과 비교하면 발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발과 손은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몸이 잘 음직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예수님의 지체로서 고유한 능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남과의 비교에서 자기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예수님의 지체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말라져 버립니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나쁘다’, ‘뉘우치지 않는다’ 는 등의 생각은 ‘나’의 기준에서 ‘너’ 를 판단하는 비교에서 옵니다.
성령의 인도에 의탁하는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히 할 수 있으며 남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기도를 숨쉬듯이 하면 성령께 의탁하는 힘이 생깁니다. 자주 성령께 기도합시다.
“오소서, 성령이시여!”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복음 환호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