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1독서 집회 27,30-28,7
2독서 로마 14,7-9
복 음 마태 18,21-35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복음. 마태18,22)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은 ‘한없이 용서하라’, ‘무조건 용서하라’ 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조건적으로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용서해 주시고, 죄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그 용서를 우리도 남에게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복음. 마태 18,33)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밥그릇이 필요합니다. 밥은 용서의 은총입니다. 사는 것은 이 세상의 생명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명을 살기 위해서는 용서의 은총인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밥그릇은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반복해서 죄를 짓곤 합니다. 우리 자신이 용서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밥을 밥그릇에 담아 두기만 하고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책감을 느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새로 지은 맛있는 밥인 용서의 은총을 주십니다. 어떨 때는 주시고 어떨 때는 안 주시는 밥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이 필요 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밥이 용서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총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는 것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배는 고프고 맛있는 밥이 밥그릇에 담겨 있는데 먹지 않으면 누구 탓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탓이 아니라 내 탓입니다. 밥을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결정입니다. 하느님 또한 내가 밥을 먹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2독서. 로마 14,8)
밥그릇에 담긴 밥을 그대로 두면 상해서 냄새가 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을 받고서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를 실천하지 않으면 원한이 되고 화가 되고 복수심이 됩니다.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1독서. 집회 27,30) 다른 계명을 잘 지킨다 하더라고 용서를 실천하지 않으면 죄인으로 계속 남아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먹지 않아서 냄새가 나는 밥은 버리고 그릇은 씻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하느님께로부터 맛있는 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쉽게 해 주는 용서는 하느님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용서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하늘 나라에 이르는 데는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용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용서’입니다. 그러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푸는 예수님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