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1독서 이사야 50,5-9ㄴ
2독서 야고보 2,14-18
복 음 마르코 8,27-35
스승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마르코 8,29-31)
수도회 신부님들이 캠핑을 가서 야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누워서 잠이 들 무렵 J신부님이 다른 수도회 신부님들 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신부님들, 지금 하늘을 바라보고 무엇이 보이는지 이야기 해주세요’ 다른 수도회 신부님이 이구동성으로 ‘수 만개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J신부님이 그것이 신부님들께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 물었습니다.
A신부님은 대답합니다. ‘천문학적으로 은하수와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백조자리 별자리와 하늘에는 수억개의 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B신부님이 대답합니다. ‘신학적으로 시편8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하느님은 얼마나 크시고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를 실감합니다.
C신부님이 대답합니다. ‘기상학적으로 내일은 청명하고 아름다운 날이 되어 우리는 날씨의 온총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다른 신부님들이 J신부님에게 묻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누워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부님께 무슨 의미가 있나요?’ J 신부님은 대답은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텐트의 지붕을 훔쳐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론과 실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29절)” 이 구절은 마르코 복음의 중심축입니다. 이 구절로 인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로서의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복음의 시작부터 이 구절 까지는 예수님 신원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준비였고 이 구절부터 복음의 마지막 부분까지는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중요한 요점을 이해했는지 질문을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27절)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명쾌하고 정확합니다. 이 대답으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위를 뜻하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고, 이 반석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지옥의 힘이 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것이 질문의 전반부의 내용으로 이론, 신학교리적인 부분입니다. 이어지는 질문은 메시아의 사명에 대한 것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내용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31절)는 구절입니다. 이 시점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의견에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비록 그가 시험에서 이론, 신학교리적인 부분에서 100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행동으로 그가 대답한 것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론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실기에서 0점을 받고 마는 장면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33절)
우리는 종종 정의를 외치는 사람의 부정의한 모습을, 윤리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비윤리적인 모습을, 신앙을 설파하지만 믿음이 허술한 종교지도자의 모습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상과 이론에 대해서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만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에는 너무 적은 주의를 기울이는 베드로와 유사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기 위한 어떤 준비해왔는지, 우리는 교리의 정답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올바른 기도문을 암송할 수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교회는 질문합니다 "믿습니까? 끊어버립니까?" 우리는 대답합니다. "믿습니다! 끊어버립니다!" 그런 다음 세례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러한 교리의 실제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는 점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보2,14)” 이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야고보 사도와 예수님께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마태오 25,31-46)의 비유에서 우리가 믿었던 방법보다 어떻게 믿음을 실천 했는가에 의해 우리가 더 많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청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