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1독서 다니 7,13-14
2독서 묵시 1,5ㄱㄷ-8
복음 요한 18,33ㄴ-37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복음. 요한 18,33)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왜 이렇게 물어볼까요? 첫째는, 왕이라고 하면 권력이 있고, 위엄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혹시 왕이라고 하면 자신의 처지가 위축될 수도 있으니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왕은 왕이지만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이기 때문에 오히려 권력도 없고, 위엄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왕 중의 왕이지만 누구라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왕입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복음. 요한 18,37)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섬김의 왕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은 낮아짐으로써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봉쇄수도원인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나오는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평판 높은 맥주 가운데 하나’ 로써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병에 라벨조차 붙이지 않는데도 한 해에 6만 상자의 맥주가 팔립니다. 맥주를 비롯해서 달걀, 버섯, 치즈, 과일, 케이크 등 수도원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한결같이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립니다. 어떻게 해서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수도자들이 사업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수도원의 경영 철학인 ‘섬김과 자기 비움’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 가운데로 육화하신 하느님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지극히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낮은 데로 임하신 하느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섬기는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할 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권능을 가진 왕이 다 보살펴 주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리스도왕이신 예수님은 지상에서부터 영원까지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1독서. 다니 7,14) 그리스도왕의 통치는 군림의 통치가 아니라 섬김의 통치입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또는 성당에서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통치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만물을 새롭게 합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어떤 자매가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 병 수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병 수발을 했지만 날이 갈수록 짜증이 나고 우울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시어머니를 미워했습니다. 그런 자기 자신이 너무 죄스러웠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콜로 3,23) 이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시어머니를 대할 때는 항상 예수님처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더럽다고 고무장갑을 끼고 대소변을 받아내었지만 그때부터는 맨손으로 할 수 있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보살펴 드렸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 됩니다.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사제직은 바로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십니다.’(2독서. 묵시 1,6)
우리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성당에서 군림하는 사람입니까, 섬기는 사람입니까? 섬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취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이렇게 하여라.’하고 명령하셨습니다. 무릎 꿇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