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1독서 예레 33,14-16
2독서 1테살 3,12-4,2
복음 루카 21,25-28.34-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복음. 루카 21,36)
대림 제1주일은 교회의 달력인 전례력으로 교회의 새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대림 시기는 ‘예수 성탄 대축일’ 전의 4주간을 말하며, 두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시기는 대림 1주부터 12월 16일까지로서 이 기간에는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깨어 기다리는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번째 시기는 12월 17일부터 성탄 전야인 12월 24일까지로서 인간 세상으로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초점을 맞춥니다. 교회는 대림 시기에 회개와 속죄의 삶을 살기를 권고합니다. 회개와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깨어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성경에서 ‘깨어 있는 것’ 은 육체적으로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지성으로 파악되는 분이 아닙니다. 교육이나 과학적인 연구로도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계시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시며, 계시를 알기 위해서는 영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대화하지 않고는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2독서. 1테살 3,13) 해 줍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아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 중에서도 기도함으로써 거룩해집니다. 자주 만나서 대화하는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우리의 삶도 영향을 받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대화인 기도는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끌어 줍니다.
둘째는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모르면 하느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회개와 속죄는 영적인 상황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의지적으로 마음만 다져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힘이 있어야 회개와 속죄가 가능해집니다. 성경은 자기를 극복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영적인 힘을 길러 줍니다. 하느님 말씀은 죄로 물든 마음을 정화시키고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며 미움과 분열이 있는 곳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하느님 말씀인 성경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몸과 영혼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셋째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어떻게 마음을 먹는 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행복과 불행은 바깥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 태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똑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벌이 마시면 꿀이 됩니다. 같은 환경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하고 꿀이 되기도 합니다. 내적인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감사하는 사람은 주어지는 모든 일을 하느님 뜻 안에서 받아들입니다. 인생은 주어지는 일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해 갑니다. 주어지는 일을 피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여기’ 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강생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지금 여기’ 가 ‘그날’ 이며 ‘구원을 받고 안전하게’ 사는 날이 됩니다.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1독서. 예레 33,16) 믿는 사람들에게 종말은 절망의 날이 아니라 희망의 날이며 구원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