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크신 자비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요한 묵 2, 4-5)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루카 18, 41-43)
가끔씩 예전에 경험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올때가 있습니다. 즉, 예수회 수련원에서 허원 전에 동기들끼리 공동식별을 해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면 수련장 신부님께서 허락하시고, 각자 정한 국내 성지를 향해 도보로 가장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하루 이상의 일정으로 사부 이냐시오의 영적 여정인 순례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계절과 때가 언제나 11월 말경이라 추웠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냈을까? 하는 마음의 대견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순례때 먹는 것과 잠자는 것 등등 온전히 구걸하면서 체면도 내려놓고, 자존심도 미련없이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보았고, 요즘 여기 주변에 많이 보이는 행려자들의 모습들을 보면서도 예전에 경험했던 그때의 순간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물론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 자신이 무엇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분별하는데에 소중한 체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시 해보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의 첫마음을 누군가와 나누었고,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첫마음은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합니다. 사람냄새나는 정이 될 수도 있고, 말로 글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신과 나누었을 수도 있고, 아니 신을 많이 닮았다 여기는 또 다른 타인을 대상으로 삶의 나눔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물음은 인생의 변화의 시기를 지속적으로 맞이해가면서 영적성장의 동력을 어디서부터 끌어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자이기에 하느님으로 답을 할 수도 있지만 믿음의 감각과 열정이 순수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또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인생 경험에서 그 힘을 만들어내려는 어리석음이 고개를 든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복음의 눈먼사람처럼 그렇게 손을 내미는 낮은 마음이 그리워질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한주간 보다 빈 마음 그러나 사랑과 신뢰로 충만한 한주 되십시오.
영적독서
로마 1, 16-17 복음의 힘
에페 6, 10-20 영적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