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타,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에 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히브 11, 32)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르 5, 7-8)
금년 겨울에는 눈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은데, 그 만큼 사고들이 많은 것 같아 기도가 더욱 간절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뉴스를 통해서 고통중에 있거나 슬퍼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냥 쉽게 지나가는 일상의 일들이 아니라 마음의 어떤 찌꺼기들을 남기고, 불편함들을 선물해 줍니다. 하지만 주님과의 대화주제로 바꾸어 가야하는 과제로 남습니다.
경건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언어와 생각, 마음의 상태는 언제나 영적인 일들(1코린 2, 13)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인간 관계 또한 그러한 감각들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이 성장해가고 있는지를 살펴가려는 자세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이성적 감정이나 신앙 고백은 곧 가정이나 이웃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순수한 신앙마저 의심 받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순수한 사명, 그것이 현시대의 예언자의 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주님의 뜻일 것이고, 본인의 내적인 기쁨 또한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천상의 기쁨과 연결지어질 것입니다. 주님 눈에 들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러운 영들의 접근은 그래서 불가능합니다.
구체적인 일상에서의 인간적인 욕구들, 삶의 다양한 관심과 실질적인 노력들은 살아가면서 보람과 여러 의미들을 만들어내지만 자신을 초월한 이웃과 세상의 더 나은 가치와 행복을 위해 밀알이 되어(요한 12, 24)줄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와같은 질문은 매일의 기도안에 담겨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선행 그 자체로 만족하는 예수님 닮은 마음이 요구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 독서
1. 요한 12, 20-26 자기 목숨을 사랑하기 보다는… 2. 호세 6, 1-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신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