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우주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분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 16-18)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 56)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태양의 찬가를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때론 입으로 웅얼거릴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깊이를 언급하지 않아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대자연의 크기 그리고 단지 신비로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놀라움, 경이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알고 싶은 욕구, 누가 이 신비를 만드셨나? 저절로 생겨났다고 여기기에는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기도하면서 상상한다고는 하지만 거대한 우주의 출생 및 변화의 시간을 현세의 시간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고, 쉽게 와 닿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단지 받아들이고, 마음에 밀어 넣는 것뿐 다른 지혜가 이에 해당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래도 인간의 감성이 상상과 결합하여 이성의 한계를 달래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마 어마한 현실이 모두 논리와 합리와 설득, 납득되지 않아도 먼 훗날 현상 세계를 벗어나는 때와 자신의 육신까지 벗어버리는 그 순간의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로움과 자유가 허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는 이들의 간절함, 절박함 들은 단지 물리적 고통과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하나의 마음뿐입니다. 거대한 우주와 자연의 신비의 출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점점 예수님을 자주 만남으로서 초월하게 되는 깨달음은 ‘이분이셨구나!’하는 단순 진리 그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그대 마음속에 오래된 감동과 위로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변함없을 것 같은 신뢰의 마음 하나를 다시금 살펴보십시오. 여전히 주님의 뜻을 비추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영적 독서
1. 로마 5, 12-21 아담과 그리스도
2. 2 티모 2, 1-13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