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 9-10)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 12)
사람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이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종교에서 의미하는 ‘영적 차원’의 특별한 가치일까요? 일시적인 마음의 위로만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계획대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해도 어떤 깊은 뜻이 있겠지! 하는 믿음과 기다림이 함께 그림자처럼 동반된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행복하고 성숙한 사람일 것입니다.
교회를 언급하지 않아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인간의 속된 욕심과 야심 그리고 자신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만큼의 야욕의 한 예로 자주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하는 원인을 자신안에서 찾지 못하고, 남 탓으로 돌리는 그 못된 마음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살펴야하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과제입니다.
요즘 봄기운이 어느새 코 끝에 와 닿아있음을 느낍니다. 또 계절이 바뀌어 자연은 대지의 신선한 생명의 기운을 맘껏 호흡하며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이 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까요? 자연의 진리를 알아채지 못하는 무딘 마음으로 신을 찾는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죽을때까지 그분을 뵙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신에 대한 오랜 고백까지도 어느순간에 허무함으로 무너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인내하며 마음의 여유을 가질때 주님께서 갑작스런 손님으로 찾아 오셔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