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 살아가는 삶의 논리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열 상 21, 15-16)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마태 5, 38-42)
이 말씀들이 어떤 의미일까? 하고 편안하지 않은 마음을 위로 올려 여쭈어 보지만 다시 질문하는 이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쉽게 답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논리와 너무나 닮아 있기때문입니다. 문제는 분별하지 못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하는 질문과 어떤 선택이 더 정의로운가? 불의한가? 하느님 눈에 드는 길인가? 멀어져가는 잘 못된 길인가? 하는 마음의 여운입니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남의 손에 들어있는 것이 내것보다 더 좋아보이고, 쓸모가 있어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내게 익숙한 것의 소중함에 대한 깊은 이해와 되새김이 부족할때에는 이성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영적 어둠으로 죄의 열매를 잉태시키는 어리석음까지 드러낼 때가 있어보입니다.
사람 마음속의 꿈틀대는 다양하고 무질서한 욕심이 그사람을 성장시키고, 인생의 다양함들을 체험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다듬어진 인격, 진정한 자유가 타인의 고귀한 삶의 길을 쉽게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여정과 죽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기준이며, 악의 실체를 온전히 들추어내는 도구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생을 살아가며 동행하고 있는 악인들의 모습, 그들의 논리로 잦은 상처와 고통을 쉽게 받지 않도록 깨어 노력합시다.
영적 독서
1. 로마 8, 18-30 고난과 희망과 영광
2. 1 디모 6, 11-16 믿음을 위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