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계획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토빗 2, 2)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르 12, 2-8)
하느님의 계획을 피조물인 우리가 온전하게 이해하고, 신앙안에서 분명하게 깨닫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기원전 3세기초나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다고보는 토빗의 역사서는 내용적으로 장편, 단편들로 구성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의 땅’으로 결국엔 인도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내용으로 셈족어 즉,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편집되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자상하심과 배려, 어느누구도 소외됨이 없는 세상 등등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지혜문학의 하나로 신앙과 영적독서로 읽혀져왔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에서 하느님의 심판, 최후의 심판의 교리는 한생을 마치고 또 다른 삶, 즉 영생으로 가는 길이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가르침이고 희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그 만큼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해서 단순하지 않고, 매우 희망적이며, 현세적 짧은 삶으로부터의 가장 큰 위로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은 영원한 생명의 기회와 길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언젠가 주인은 돌아올 것이고, 당신께서 맡겨주신 일들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일꾼인가?”라고 단순하게 질문을 되새기는 일상은 어떨까요? 어렵고, 무거운 기도의 내용을 찾기 보다는 아주 단순하게 “나는 매일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또 기도의 응답이 오는가? 등등
어떤 대가를 바라는 선행은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자신의 선행을 바로 이어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음을 믿는 것이지요. 악과 불의는 이렇게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고 만족해 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의지적으로 키워가는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들에 씨를 뿌리지 않아도 끊임없이 새싹을 틔우는 잡초들처럼 악과 불의도 그들을 닮아서 우리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영적 독서
1. 욥 24, 13-17 빛의 적들
2. 집회 7, 1-17 갖가지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