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7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아모 2, 6-7)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 21-22)
또 한해가 반환점을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세월이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내면에 채워가는 양식들이 다르겠지만 거부할 수 없는, 창조주께서 명하시는 삶의 의미들은 다음으로 미룰 수 없는 순간들의 가치가 분명히 가르침으로 전해줍니다.
요즘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상 곧곧에서 보여주는 사건, 있는 그대로의 현상들이 생각을 그대로 멈추게 하고,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토록 전했던 하느님의 뜻, 인류의 죄악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또는 직접적으로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 등등
경건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원한다는 것은 뭔가 진실한 변화와 더 나은 행복, 가치 그리고 참된 기쁨의 삶을 이해하고 더 소중한 일상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원의를 추구하는 것이며 그 방법으로 창조주 하느님 앞에 자주 머물러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기도생활, 영성생활은 이성으로 뭔가 손에 잡히는 의미를 찾기에 앞서서 더 쉬운 물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순수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벽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을 하루에 몇번이나 바라보며 잠시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대가 원하는 행복 또한 어느만큼 가까이 있는지, 여전히 멀리 있는지 짐작하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볼 수 있는 자에게만 보이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