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9 묵상으로 초대
이미 기적안에 살고 있으면서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 8)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 38-39)
사람의 몸은 기계와 같다. 라고들 쉽게 인정하지만 막상 어딘가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으면 불안해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초연하게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모든 기능면에 있어서 인간의 신체조직과 세포조직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몸을 신비 그 자체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의학과 과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아닙니까? 그러기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만들어가는 기계 또한 몸을 모방하여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눈에 보여지는 인간의 삶 또는 묵묵히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모든 자연의 변화안에서 마음이 순해지고, 정화되어가는 것 자체가 종교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실질적인 신앙과 영성 생활의 경건함은 그렇게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이나 애착,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또한 현실의 소중함을 놓치는 안타까움이 찾아드는 계기도 될 것이며, 아직 오지 않은 먼 내일도 너무 앞서서 달려가려는 마음 또한 인간의 성숙하지 못한 나약함의 일부일 것입니다.
성실하게 자신의 우선적인 마음의 불편함들로부터 꼼꼼하게 살펴나가면서 그런 마음에 질서를 입히고, 여유로움의 향기와 관대함의 새옷을 걸치는 일상은 아무리 계절이 바뀌어도, 시간이 무섭게 달려가더라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습니다.
너무 큰 기적을 희망하기 보다는 지금 이대로 내 자신이 깨어있음에 감사드리면서 잠깐의 깊은 호흡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또 한주간의 시작을 감사의 마음으로 채워갑시다.
영적 독서
1. 욥 14장 돌이킬 수 없는 죽음
2. 시편 62, 1-13 오로지 주님께만 희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