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은 세상의 이치를 거슬러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2 코린 4, 10)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 25-26)
만물의 으뜸이라고 하는 인간도 탄생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의 모습은 모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의 언어, 엄마, 아빠의 입모양과 표정, 자신을 온화하게 바라보는 그 따사로운 눈 빛으로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느끼고, 살아있다는 본성과 의미를 찾아 한 인생이 길을 찾아 떠납니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하고, 연극 무대라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삶을 몇막 몇장이라고 내용을 담기도 하며, 장르 또한 말할 수 있겠지요. 인생이 코메디일 수도 있고, 슬픈 영화처럼 흐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부류의 관객을 기대하십니까? 하느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정반대의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갖는 내용이면 더 성공한 인생 각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어떤 배우이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매 순간 천상의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인간이 수많은 피조물들 중에서 신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고, 각자의 시간은 다르지만 먼훗날 천상의 시민이 되고자 하는 갈망과 희망이 있기에 평범한 세상을 초월한 감각을 익숙하게 훈련해 갑니다. 그러한 여정을 영성생활, 기도생할한다고 말들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물리학자는 종교인들,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무지개를 쫓는 사람들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안에는 그 사람 자신과 신만이 알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인생을 모르거나 자신의 존재의 근원조차 부인하는 무지는 인류역사 전체를 흘러 앞으로도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신앙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외면할 수는 없겠지요. 허락된 또 한주간의 시간도 행복하십시오.
영적독서
1. 에페 5, 6-20 빛의 자녀
2. 히브 3, 7-19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