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고 손을 잡아야 하는 분
그분은 너희가 찬양을 드려야 할 분이시고,
너희가 두 눈으로 본 대로,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크고 두려운 일을 하신 너희 하느님이시다.(신명 10, 21)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마태 17, 25-27)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세대는 변화가 매우 빠르고, 저마다 꿈과 희망 미래에 대한 계획들이 있겠지만 이루고자 하는 정도가 무엇인지, 만족도가 어느만큼인지 쉽게 가늠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몇일 전 문득,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역사적, 시대적 고통의 시간, 무엇에 희망을 두고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디어 내셨을까? 하는 물음이 밀려왔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들어서 일제 강점기 36년 그리고 6. 25 전쟁을 모두 겪으셔야 했던 분들이십니다. 그 당시에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으셨겠습니까? 또 그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과 신앙인들의 삶 또한 오늘날의 모습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도 많이 달랐을 것임을 짐작합니다. 기도의 깊이나 내용들이 그 만큼 더 절박했을 것이고, 구체적인 현실을 담아서 매달리셨겠지요. 인간의 노력이나 실질적인 사회환경과 정치 지도자들의 나약함 그리고 침략자들의 잔인함, 세계의 정세 등등에 관하여 오로지 신앙안에서만 그 답을 찾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이 역사적으로 쓰여진 시기는 예수님 사건이 지나고, 예루살렘 성전마저 이미 로마제국에 의해 파괴가 된 이후이며,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내쫓긴 시기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세금 문제로 언급되고 있던 시기에 그 만큼 로마와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 간에 세금은 민감했던 문제였고,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멀리 희망을 잃지 않게 해야하는 누군가의 믿음직 스러운 지도력과 위로가 필요했던 때였습니다.
시대의 징표와 자신의 고유한 삶의 시간들을 조화롭게 이루어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주어진 하늘의 사명입니다. 여기에 거룩한 신앙은 약해지려는 인간의 마음,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웃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세계관이 부딪히며 잠을 이룰 수 없도록 생각으로 묶어놓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위해 멀리 응시하는 뜨거운 영혼의 열정은 하느님을 미소짓게 해 드리는 위로의 불씨가 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한주간도 잘 이겨나갑시다.
영적 독서
1. 신명 10, 12-22 사랑과 순종의 법
2. 토빗 13, 1-18 토빗의 찬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