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올리브색 그리고 흰색. 좋아하는 색깔로 예쁜 무늬를 넣어 뜨개질을 한다. 무늬 내기가 어려워 풀었다가 다시 뜨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제법 원하는 모양이 되어 간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실타래가 엉켜져 있었다. 도무지 풀 수가 없어서 한참을 다른 일도 못하고 엉킨 실타래와 싸움을 한다. 오늘 하루 내가 겪은 일들이 이 엉킨 실타래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 안되면 싹둑 잘라 버리면 되니까.
정말 긴 하루였다. 됐다 싶으면 또 다른 일이 생기고 마무리 돼간다 싶으면 안심하고 있던 부분이 다른 문제로 꼬리를 물고 다시 떠오른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해결하고 말리라는 나의 기세는 주변의 가족까지 힘들게 한다.
숨을 고르며 이 어지러운 일들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나 혼자 잘 살겠다고 하는 일이 아닌데, 도대체 왜?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들려온 내면의 대답은 욕심!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며, 내 삶을 억척스럽게 지켜가려는 치열함으로 치닫는 나를 본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미를 담아보려 했지만 결국은 욕심 때문이란 걸 나는 안다.
뉴욕주에 있는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원 수사들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그중 숲 속의 은둔소에서 혼자 생활하는 로버트 수사님. 25년이 넘게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수사님은 기도와 침묵과 명상으로 그 긴 세월을 살고 있다. 전기와 물도 없는 그곳에서 물은 빗물을 받아서 해결하고, 최소한의 생활 도구만을 갖춘 곳에서의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난다.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도원의 일상.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의 삶은 하느님을 향해가는 여정일 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삶 속에 자유와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청빈과 가난의 생활에서 주름진 수사님들의 선한 미소는 참 소유가 어떤 건지 짐작케 한다. 그런 수사님들의 일상을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수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을 돌봐야 하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한 생활을 하면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에 위로를 받는다.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리를 마련해 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이제 엉킨 실타래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