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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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로마 11, 29. 36)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3-14)
옛말에 세상에서의 복은 타고 난다.라는 말들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인간적인 애씀과 노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소위 성공이나 큰 변화를 선물로 주어지지 못한다는 다소 절망섞인 체념의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희망에는 맞지 않는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가끔씩 마음이 교회의 가르침에 거스르고 싶을 만큼 세상의 부당함, 이해되지 않는 인간의 이기주의, 편협된 마음들에 저항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경건한 마음과 신앙안에서 위의 말씀들을 되뇌어보면 앞에서의 답답한 고백이나 표현들이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해소가 됩니다. 세상과 또 그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국제적인 혼란스러움, 인간의 잔혹함들 등등 그 모든 현상들의 끝,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하느님 안에서, 교회의 역사를 가늠자로 할때 분명한 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세상의 문명은 더욱 편리해지고, 공간적 거리 또한 좁혀놓은 것은 인간에게 신의 창조능력을 닮아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지만 그 반대로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깨어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언제든 자신의 양보할 수 없는 사명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제의 아쉬웠던 시간들에 오래도록 매여있지를 않습니다.
좀더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과 세계 곳곳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난민들, 가난한 이웃들 etc) 그들과 함께 머물고, 또 어려움들을 들어주고 온마음으로 살펴주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큰 지혜일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받은 은사의 뿌리는 이러한 순수한 마음에 깊이 깊이 내려져 있습니다.
영적 독서
1. 신명 32, 1-44 모세의 노래
2. 역대 하 1, 1-13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