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요한 묵 14, 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 4)
위령성월도 저물어 가면서 교회력으로는 한해의 마무리 주간입니다. 또 한해를 역사안으로 보내면서 많은 아쉬움과 미련이 마음을 무겁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새날들은 더 큰 희망과 설렘으로 우리를 초대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구원의 신비는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역사와 시간안에서 드러난 사건들만을 보더라도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물어온다면 먼저 질문이 앞서는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과 이기적인 생각,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이 어리석음으로 막혀있음을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참된 지혜와 성숙한 인격은 자연에 순응하는 겸손의 일상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자연의 시간과 구체적인 변화, 그 위대한 역사와 함께 영원한 세계, 생명을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신비와 영적인 여정은 단순한 생각으로, 감성의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내적인 고요함과 경솔하지 않은 신중함, 거룩한 신앙 고백에서 그 생명의 씨앗을 보게 됩니다.
복음에서 과부의 순박한 믿음과 사랑의 실천은 여인이 이미 보고 있던 그리스도의 빛이 그 마음을 만들어낸 것이며, 결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신앙과 사랑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