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지향 잃은 신심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이사 1, 15-16)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마태 10, 34-35)
그리스도 교회의 전례는 예수님 부활과 승천이후 사도들 머리위로 성령께서 내려오시기까지 다락방에 숨어지내며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던 그 모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공생활의 모든 말씀과 제자들이 목격했던 기적, 그리고 당부의 말씀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제자들 각자의 실질적인 경험들을 나누는데에 그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모임의 중심 내용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 및 죽음과 부활이 가장 중심이며, 이후에 그 모임의 내용과 성격에 있어서 각 사도들을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었고, 사도들이 어디를 가든 스승의 가르침과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줌으로써 이미 자신들이 경험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갔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관계, 하느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신원이 바뀌었다는 것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분명한 삶의 길과 지향이 쉽게 변하지 않는 선택으로 온전히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신앙 공동체로 서로를 물리적, 공간적으로 묶고 있지 않아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의 구체적인 일상의 지향이 다를지라도 하느님께 뿌리내려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과의 만남의 시간, 물리적 공간과 신앙고백의 시간은 양적으로 가늠하기보다는 영혼의 순수함과 믿지 않은 이웃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성찰해가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과연 어떤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자신만의 고유한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매일 더듬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지혜롭지 않은 열정이 또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면서도 순수하지 못하고 미성숙한 영성으로 오히려 공동체로부터 누군가를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때로 외롭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고독으로 밀어넣기도 합니다. 더큰 오해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나때문에 서로 반목하고, 갈라서는 것만 같을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영혼이 흩으러지지 않고, 더욱 맑게 빛을 내도록 준비시켜간다는 오해와 도전은 곧 기쁨과 놀라운 위로로 다가올 것입니다. 한주간도 행복하십시오.
영적독서
시편 23, 1-6 주님은 나의 목자
바룩 2, 11-35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