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꿈에서 아버지와 나는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꿈의 내용을 잘 기억해야지 하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연이어 아버지가 또다시 꿈에 나타나셨다. 누군가 얘기하길 돌아가신 분은 꿈에 나타나도 말은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꼭 그렇진 않은가 보다. 아버지와 나는 오랜만에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었으니까.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오랫동안 병중에 계셨던 아버지,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많은 일들을 겪으며 힘겨운 세월을 보냈다. 솔직히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에 많이 담겨 있진 않았다. 오히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둘레에서 벗어난 엄마가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길 바랬다.
그러나 엄마는 아버지라는 세계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시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란 존재는 엄마의 자유의지를 붙드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언제나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만 아버지를 보아왔기에 엄마는 피해자, 아버지는 가해자. 그렇게 선을 그어놓고 약자인 엄마의 대변인으로 살아왔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 그래서 무조건 엄마 편을 들었던 못 된 딸이 이제야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지난 시간들 속에 한 조각의 무엇이라고 찾아내려고 기억을 더듬는다. 말로만 들어 알고 있는 서너 살 이전의 아버지가 나를 너무 이뻐해서 동네 술집에 친구들과 술 한잔 하러 갈 때도 꼭 나를 데려갔다는 얘기.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딸만 셋이 있는데도 나만 보면 안아갔다는 얘기. 약골이었던 나를 위해 여름이면 아버지는 개울에 나가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어 주셨다. 밥그릇 뚜껑에 미꾸라지를 담아주면 들고 다니며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다른 기억들은 나지 않는다.
요즘의 엄마의 일상이 힘들어 갈수록 아버지의 존재가 그립고 큰 울타리였음을 깨달았다. 너무 늦게… 부부는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자식이라도 그걸 알지 못했나 보다. 나의 부모님은 긴 세월을 한 길을 같이 가기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까닭에 평행선이 주는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신 것 갔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버거워 힘든 세상을 살아온 엄마가 아버지와의 세상이 사라진 뒤에도 그 세상의 끝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딱 2년만 더 살고 갈 것이라는 엄마의 다짐은 공허함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오늘을 살지만 과거의 문안에서 여전히 맴도는 엄마에 대한 연민이 깊어질수록 아버지가 그립다. 어젯밤 그 그리움에 답하듯 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