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보낸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가을빛이 아름다운 날들이다. 굳이 단풍을 보려고 멀리 갈 필요는 없지만 사방이 막힌 듯한 답답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쫓아 그림처럼 펼쳐지는 남가주 북쪽 끝에 위치한 시에라 산맥과 함께 가을이 숨 쉬는 곳, 비샾을 다녀왔다.
오래전 아이들과 함께 첫눈을 맞이했던 South Lake, 성당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단풍을 주웠던 Sabrina Lake, Intake II Lake의 낡은 야외 테이블에는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마시던 코코아의 달콤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듯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간 Convict Lake은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호수를 지나 이어진 숲길엔 이미 떨어져 내린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자작나무와 그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가을빛이 빚어내는 조화로움이 장관을 이루었다.
지독히도 무더웠던 여름과 사방에서 일어난 거대한 산불의 위협을 겪은 가을 나무 숲 속을 걸으며 세상을 혼란으로 치닫게 한 코로나, 기상 이변, 환경오염, 불신, 허무함.. 온통 부정적인 물음을 쏟아내며 “하느님, 왜요?”라며 지난 몇 달간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느님은 속 시원한 대답을 주시진 않았지만 분명한 건 온 세상 사람들 못지않은 슬픔을 당신도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자연의 변화는 거룩한 예식처럼 반복되고 내게 주는 하느님의 메시지는 늘 함께 계신다는 것,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때도 많지만 결국 길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건 하느님의 자비, 사랑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람 소리에 휘적거리는 나무들의 울림을 통해 깨달았다.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빚어진 인류가 이제까지 누려온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왔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순환의 고통과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우리가 누려왔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남겨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감수하는 것이 또한 우리를 살리는 길임을 앙상해져 가지만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가지를 뻗은 나무들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