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갑작스런 초대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에제 24, 16)
그때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 16-17)
우리 모두는 때가 되었을때 세상에 왔습니다. 여기서 때란 어머니 뱃속에서의 때 겠지요. 물론 어떤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 때를 병원 의사 선생님들과 따로 정하기도 하지요.
생명은 하늘이 정하고, 다시 돌아갈때에도 하늘에 온전히 맡겨두어야 미련이 덜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의지와 열망과 노력을 넘어서는 힘이라 여겨집니다. 더구나 죽음은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노고와 하늘에 그동안 쌓아 올린 선업이 비로서 빛을 내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지요.
세상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나라고 여기겠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는 어두웠다가도 오늘은 밝고, 어제는 부정적으로 침울해 있었다가도 오늘은 세상을 다 안은 사람처럼 밝게 웃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을 이끌고 있을까요? 그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삶을 내어 맡기며 살아갈까요? 아니면 이루고 싶은 욕망이나 꿈들을 펼쳐나가는 힘이 어디에 근거할까요?
좀더 시간이 흐른뒤에 제가 이렇게 표현해 놓은 글들을 스스로 바라보면 웃음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끊임없이 나를 글로 아니면 행동으로 표현하고 다시금 주어담으며, 자신만의 인생 꼴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다보면 그 애씀이 하늘에 닿을 것이고, 성실과 성심을 담았는가에 따라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이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의 영원한 생명은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의 운명의 때를 깊이 자신의 고유한 길로 여기고 달려간다면 하늘이 결코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보다 여유롭게, 하늘과 관계된 일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더욱 정진해 갑시다.
영적독서
1. 열왕 상 2, 1-12 다윗의 죽음
2. 다니엘 12, 1-13 마지막 때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