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생신을 몇 주 앞둔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 독감과 폐렴으로 인해 며칠간의 병원 입원과 또다시 응급실을 오가며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고 죽 조차 넘기질 못하며 몇 주일이 지나갔다. 내 마음은 급해지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병약한 엄마를 모시고 주치의를 방문해 수액을 놔 드리며 의학의 힘에 의존했다. 어는 날 마음 안에 병자 성사를 받게 해 드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신부님께 병자 성사를 청하고 저녁 미사를 마치고 홀로 성당에 남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신부님을 만나러 갔다. 병자 성사중에 봉성체를 모시고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예수님을 부르라는 특처방까지 받으신 엄마는 얼굴이 환해지셨다.
며칠 후 엄마 소식을 들은 친구 부부가 멀리에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깊은 친구는 늘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영적인 힘과 위로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날도 엄마의 발을 주무르며 얼마 전에 선종하신 시 아버지의 임종까지 한 달여를 지킨 본인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큰 며느리지만 시댁은 한국에 있기에 기도로밖엔 자식의 도리를 할 수 없었던 친구는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바로 한국으로 나갔다.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며 성령께서 하신 말씀, ‘누워있는 저분이 바로 나다.’ 라며 몸은 비록 고되었지만 영적인 평화로 충만한 그 시간은 시아버지를 통해 예수님을 씻겨드리고 상처를 만져드린 복 된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그 귀한 체험을 글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친구의 말을 통해 들은 ‘복 된 사순절’!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이 수난하고 죽으신 사순절이 돌아오면 마음은 무거워지고 어서 부활이 왔으면 하는 조급함에 시달리던 나의 좁은 시야에 섬광이 비치는 듯했다. ‘너는 왜 나와 함께 걷는 십자가 고난의 길을 두려워 하기만 하니? 내가 걷는 그 길에 네가 나의 손을 잡아주고 목마른 나에게 물 한 모금 축여준다면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니?’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사순절은 예수님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십일 간의 복 된 시간임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엄마가 혹여 회복되지 못한다 해도 절망하지 않을 것이며 회복되신다면 이 또한 주님께 감사 드릴 일이니, 이래도 저래도 세상을 살면서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주님께 의탁하며 함께 걷는 복된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