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 엄마는 가방을 챙기고 옷을 고르고 립스틱까지 바르시느라 분주한 하루를 시작한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오롯이 자신을 위한 하루를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어느새 일 년 반이 지나간다. 엄마는 이제야 조금씩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일상을 살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안타깝고 때론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잦았다. 평생을 아버지의 그늘에서 말 한번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어쩌면 이젠 홀가분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무엇이 그렇게 엄마의 몸과 맘을 피폐하게 만들었을까?
아버지의 오랜 병치레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엄마. 저렇게 사느니 하느님 품으로 가서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바로 알게 되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몇 달을 누워 지내다시피 하면서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 엄마 본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누워있거나 음식을 만드는 나머지 시간을 제외하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계속 켜놓은 촛불 앞의 예수님과 성모님상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하신다. 그렇게 절절하게 기도를 바치면서 엄마의 영혼은 세상일과 멀어져 갔고 대인 관계가 뜸해진 엄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맴돌았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그것만이 엄마를 힘들게 한 건 아닌 거 같다. 엄마가 태어난 1941년 암울했던 그 시대의 배경이 그러했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보낸 유년 시절의 아픔과 충격, 여자라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지 않았던
나의 외조부에 대한 서운함, 남자 형제들과의 차별 대우, 결혼 후의 생활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던 젊은 시절, 아버지의 병..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엄마의 인생. 그 안에 정작 본인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온 세월 동안 억압받은 감정이 한꺼번에 엄마의 몸과 정신을 휩쓸어 버린 것 같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은빛 여정” 이라는 노인 대학 과정에 엄마를 등록시켰지만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아프다며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를 유치원 아이 달래듯이 실랑이를 거듭하며 성당에 나가시게 했다. 비록 결석한 날이 더 많았지만, 엄마는 조금씩 세상 안으로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는 양로센터에 다니시기 시작했다. 뽀시시하게 화장을 한 여든이 훨씬 넘은 할머니들 보다 안색이 더 안 좋은 엄마, 만사가 귀찮다는 엄마의 무심한 표정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아침 기도를 바친 후 7시까지 엄마는 센터에 가는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간단한 아침 식사용 셰이크를 타서 드리고 약을 드시게 한 후 전화기와 열쇠를 가방 안에 잘 넣었는지 확인하고 입고 갈 겉옷은 날씨와 맞는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신발과 지팡이를 챙겨 드리면 “띵 동” 하고 벨이 울린다. 학교 가는 아이를 배웅하듯 버스에 오르는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하며 새벽의 찬 공기는 또 왜 이리 달콤한지.
다음 주 엄마 생일에 드릴 자동 연필깎이와 예쁜 여자아이의 그림이 그려진 24가지 색연필을 선물로 준비했다. 엄마가 다시 소녀의 눈빛으로 색색이 고운 세상을 그려가길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