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아버지 학교에 남편이 참석했다. 작년에 개신교에서하는 아버지학교를 두번 밖에 수강하지 못해서 올해 다시 재수강 한다며 매 주일날 오후면 가방을 챙겨 들고 학교를 향하며 좀 더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 애쓰는 모습이 내심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마지막 오주째 수료식을 한다며 내가 가야한다고 하길래. 맘이 내키진 않았지만 말 그대로 숙제를 도와준다는 맘으로 따라 나섰다. 많은 아버지들이 서로 다른 성장 과정과 환경 속에서 자라오며 겪었던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또한 부부 사이의 관계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지며 오랜 동안 상처로 혹은 애틋함으로,아쉬움의 기억을 다른 아버지들과 나누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보여준 십오분 정도의 영상물은 며칠이 지나도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그리고 착한 아내가 있는 마흔 한 살의 젊은 아빠. 두번째로 발병한 대장암으로 몇 개월간의 투병 생활을 하며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아빠의 애절함과 끝까지 응원해 주고 보듬어주는 가족의 이야기는 함께 한다는것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지금 옆에 있는 내 남편이,아빠가 얼마나 우리가 사랑하고 또한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어가는 버팀목이 되는 사람,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것을 해야만 하는사람, 그 역할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을땐 서슴없이 비난을 받아 마땅한 사람,,, 그 마음엔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들은 늘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음을 알았다. 가족에게서든 사회에서든 인정 받음이 곧 사랑 받는것으로 알고 부단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단련하며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남편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늘 아버지의 역할만을 요구해 왔다. 엄마를 고생시키고 자식을 제대로 공부 시키지 못하고 가족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때론 샐활고에 시달려야 하는건 온전히 아버지의 탓이며 능력 부족으로 여기왔다. 물질적으로 가족을 이끌기는 하지만 늘 바뻐서 밖으로 도는 아버지는 능력은 되지만 사랑이 없는 혹은 가족의 유대감을 해체 시키는 원인 제공자로서 그것 또한 아버지 탓으로 여겨왔다.
많은 아버지들이 제대로 사랑을 표현을 할 줄 몰랐고 어떻게 가족과 시간을 나누는지 몰랐다.이제라도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모인 아버지들의 모임이 좀 더 많은 아버지에게 희망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주교에서의 아버지 학교를 개최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이미 개신교에서는 널리 알려진 개신교아버지 학교를 직접 수강하고 봉사해오며 이 곳 남가주에서의 카톨릭 아버지 학교를 개최하기 위해 수고한 많은 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낸 첫 발자국이 많은 아버지들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인생 여정을 살아가는 길잡이 역할이 될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하며 외치는 아버지들의 외침이 내내 귓전에 가득하다. 그것이 그들의 간절한 내면의 외침임을 우리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가정안의 아버지는 역할로서 만이 아니라 사랑의 중심으로 또한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로서 가정안에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