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멈추고 감성이 숨 쉬는 거, 이것을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주변에 널려있는 온갖 걱정거리로 이런 상황에 여행을 가는것이 옳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여행은 어떤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일상에서 벗어나겠다는, 현재의 모든 상황을 일상에서 잠시 밀어내겠다는 결단 말이다.
똑같은 하늘과 바다건만 이국의 하늘과 바다는 왜 그리 느낌이 다른지, 스치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꽃들도 더 아름답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이태리의 남부, 소렌토 앞바다에 자리한 카프리섬은 한마디로 환상의 섬이었다. 특별히 뛰어난 절경도 아닌 것 같은데 바다의 푸르름이 더하고 바람의 향기가 그 어느 곳보다 달콤한 낭만의 섬이었다. 이태리의 멋쟁이들이 흰 리넨의 옷자락을 날릴 땐 신선한 옷감의 향기가 날리는 듯했고 했고 무뚝뚝한 그들의 표정조차 멋지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카프리섬을 산책하던 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사람과 사진을 찍으려는 무리에 로벨또는 필사적으로 끼어들어 아이린과 남자가 함께한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유명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찍은 사진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 지칭하자면 홍명보 같은 존재로 밀라노의 유명한 프로 축구 선수였고 지금은 축구 코치로 활동 중인 “카투소”라고 한다. 이번 여행 중에 기억될 미소를 짓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태리 하면 가죽이라는 말이 있듯이 단테의 고향 피렌체는 수많은 박물관과 가죽 공예가 뛰어난 곳이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장인의 솜씨를 간직한 공방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청동 위에 금을 입혀서 만든 희망을 상징한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은 완성까지 28년이 걸렸다는데 믿기 어려울 만큼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곤돌라를 타고 집과 집 사이의 수로를 따라 돌았던 수상 도시 베네치아의 마르코 광장에 있는300년이 돼가는 카페에서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그리고 피아노로 연주하는 가수 이승철의 노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내리는 비와 함께 촉촉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주일간의 이태리 여행은 그렇게 잠시 쉬어가는 자리였으며 찬란했던 가톨릭 역사의 자취를 직접 둘러볼 수 있었던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500년이 넘게 지어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과 바티칸 시국에 자리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경이로움과 가톨릭 신자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편 천지창조라는 대작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정 벽화 속에 정작 본인의 모습을 축 늘어진 가죽만 남은 처참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미켈란젤로처럼 찬란했던 문명 뒤에 심한 노역의 세월을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져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성당의 화려함에 씁쓸한 맘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인지..
여행이 끝나갈 무렵 로마 근교의 바오로 사도의 참수터에서는 그분의 발자취와 마지막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신앙을 위하여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바오로 사도의 일생에 머리를 숙이며 바오로 사도가 감금되었던 지하 감옥이 있는 천국의 계단 경당에서 주일 미사 중 은은히 들려왔던 라틴어 성가에 눈물이 나왔다. 내 안의 계시는 주님을 향한 마음은 찬란한 교회 문화 안에서 경이로움으로 그분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소박하고 어두운 곳에도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카프리섬의 초록빛 바다 내음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는 이태리 여행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로마 국제공항을 뒤로하며 일상으로의 귀환을 서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