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미사와 축하 행사를 마쳤다. 신부님들과 수녀님 그리고 많은 봉사자가 이날의 미사와 행사를 위해 이 년여의 시간을 준비하는 긴 여정의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자리에서 애썼던 보람이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50년의 긴 역사 중에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아그네스 성당과 함께한 나에게도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친정집 같은 본당에 남다른 애착과 감회를 느낀다. 아이린이 첫영성체를 했던 사진 속에는 앞니가 빠진 짓궂은 미소가 있었고 96년의 성당 설립 기념일에 먹었던 음식으로 인해 식중독이 온 성당 신자들을 휩쓸어 둘째를 가진 만삭의 임신부였던 나와 온 가족이 며칠째 누워 있어야 했던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후 둘째는 유아 세례를 받아 대학에 갈 때까지 성당에서 성장하며 신앙을 알아가는 유년의 시간을 지나 청년이 되었다. 98년 우리 가족을 위해 이곳으로 이민 오신 부모님은 교리반 시절부터 레지오에 가입하여 신앙 생활을 시작하셨고 엄마는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며 어느새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신다.
작년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이 많지 않은 우리에게 소성당을 가득 메운 아버지의 장례미사에 세 분의 신부님과 신자들의 기도로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성당의 주위를 맴돌던 남편과 나는 우리 생애에 커다란 시련을 겪은 후 주님의 부르심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어 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주셨음에 감사드리며 살고 있다.
남편이 창립지인 아모르 제4권의 출판 위원장이 되어 내가 편집일을 하게 되었는데 평소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전문 작가가 아닌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에 겨운 일이었다. 함께 편집일을 시작한 출판위원회 식구들과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목차가 늘어갈 때마다 보람을 느끼며 출판부 가족들과의 우애도 함께 자라났다.
막막하기만 했던 이 년 전이 엊그저께처럼 느껴지는데 오늘 마지막 원고를 정리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르게 올라오는 이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주님이 내게 주신 숙제를 마친 기분인가? 기념지가 출판되어 나오면 신자들의 반응이 어떠할지 벌써 걱정이 앞서니 한심한 일이다. 남편이 글을 쓰라고 창가에 놓아준 책상에서 내다보이는 배꽃 나무는 사계절을 돌아 다시 초록의 빛을 뿜어내고 있다.
내일은 주일 미사를 마치면 출판부 가족들과 함께 성당 이냐시오 카페에 앉아 오랜만에 여유로운 커피의 향을 음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