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편안함 또는 친숙함이라고 생각한다. 해당화 날리는 봄날의 고등학교 교정을 함께 거닐던 2명의 친구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감성과 이성의 경계를 수없이 드나들던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나누었던 정감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마음속에 애틋함으로 남아있다.
미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었던 친구를 25년 만에 만났다. 그 친구는 내가 살고 있는 같은 엘에이 하늘 아래 살고 있었다. 나를 찾아준 친구에게 감사하며 잃어버렸던 또 한 명의 친구까지 함께 찾게 된 행운이 겹쳤다. 그 친구를 만나던 날 우리 사이의 세월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늘 함께 지내왔던 것 같은 편안함에 놀라웠다.
한국에 살고 있던 또 한 명의 친구는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먼길을 서슴지 않고 찾아왔다. 우리의 남편들은 흰머리가 어울리는 중년의 멋스러움을 간직했고 세명이 똑같이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 두 명의 이십 대 청년을 둔 부모가 되어 있었다.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의 어려움과 행복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서도 잘 살아왔음에 감사했다.
세분의 아버지와 한 분의 어머니를 보낸 슬픔을 나누며 살아계신 두 분의 어머니가 건강하기를 바랐다. 어느새 성인이 된 아이들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빛났던 젊음이 있어 그 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더 늙기 전에 우리가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 친구들’.
늘 아줌마들의 단골 메뉴인 남편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모두들 적지 않은 사연을 지닌 그녀들의 남편 이야기는 그치질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친구의 지난날 이야기는 역전의 용사가 따로 없었고 초기 이민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온 친구의 지난날은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며느리로 아내로 부모로의 역할로 존재했던 우리들의 지난날에 인생의 고달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온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여름의 열기가 서서히 가을을 내주는 뒷마당에서 친구와 나는 기울어가는 오후의 한 자락 햇볕을 받으며 쉬어가는 시간속에 한참을 머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