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 곳, L.A는 다른 지역보다 COVID-19 으로부터 심한 시달림을 겪으며 어느새 겨울의 문턱을 넘어 얼마 남지 않은 새해를 바라보고 있다. 올 한 해는 걱정과 한숨 속에 온 인류가 몸 살을 앓고 있지만 계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의 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아직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새벽녘에 살짝 흩뿌린 비덕에 하늘은 파랗고 하얀 솜털 같은 구름과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누려왔던 삶의 방식이 변화되고 제약된 장소와 좁아진 생활 반경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나름 적응하며 무사히 한 해를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12월이 되면서 하루에 4번 이상의 Zoom을 통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아이린의 복장이 성탄절 분위기로 바뀌었다. 빨간색 상의에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양말까지 빨간색으로 맞춰 입고 내겐 낯선 비대면의 온라인 세상을 즐기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며 지금의 상황을 잘 살고 있어 대견하긴 하지만 씁쓸한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성탄을 맞이하며 온갖 만남과 행사를 준비하던 예전의 스케줄은 빽빽한 일정으로 소화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공백으로 되어있는 지금의 일정표가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남겨진 공간 속에 덩그렇게 서있는 나를 들여다본다. 외롭고 수심에 차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편으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충만함도 보인다. 그 충만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하느님의 뜻을 갈구하는 마음, 가족과의 관계,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한 내면 속에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괜찮아. 힘들다고 느끼는 건 잘못이 아니야. 아닌척하는 게 더 너를 힘들게 하는 거야. 부족해도 괜찮아. 화내도 괜찮아… 이렇게 나를 달래는 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스며드는 자유로움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다.
이번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은 새해 1월 7일에 만나게 될 거라고 남편이 말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12월 24일에 아기 예수님이 오셔서 자가 격리를 이 주일 동안 한 다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참.. 웃지 못할 농담이지만 현실에 딱 맞는 말이다.
오랜 세월 쌓여있던 마음속의 먼지를 털어내고 용서하지 못했던 나 자신과 주변의 것들로부터 벗어나 참다운 자유로움으로 내면을 채워가는 모습으로 변화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예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